사용자토론:Cane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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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75(토론 · 기여) 2015년 4월 7일 (화) 18:18 (KST)답변

특정 종교에 치우친 편집 삭제

[편집]

하나님, 하느님 등 여러 종교 관련 문서에서 Canendo 님의 편집을 되돌립니다. 특정 종교에 치우쳐 다른 종교의 교리나 일반적인 설명을 훼손하는 형태로 이루어진 금번 Canendo 님의 편집은 위키백과의 중립적 시각 원칙에 따라 금지되어 있습니다. 또한 공인된 출처가 없어 위키백과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주의 부탁드리며, 적절한 출처를 포함해서 기존의 내용을 건드리지 않고 특정 종교의 입장에서 보는 하나님, 하느님 등의 개념을 추가로 서술하시는 것이 위키백과에 어울리고 허용되는 것이니 참고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15년 4월 8일 (수) 10:41 (KST)답변


Canendo님, 지금 당장 편집을 멈춰 주십시오. Canendo님께서 하나님 문서에서 편집하신 내용은 중립적 시각에 대한 정책을 위반하였기 때문에 위키백과의 정책과 지침과 맞지 않아, 편집하시기 전으로 되돌렸습니다. 위키백과 사용자들이 지키는 기본적인 사항은 정책과 지침 문서를 참고하시면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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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하나님 문서 되돌림

[편집]

안녕하세요, Canendo님!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기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께서 하느님, 하나님 문서에 해 주신 편집은 믿을 수 있는 출처가 없기 때문에 문서를 편집하시기 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이전의 편집 내용은 편집 역사에 기록되어 있으니 다시 한번 편집 내용을 확인해 주세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위키백과 도움말을 참고하시거나 다른 사용자에게 질문해 주시면 됩니다. 연습이나 실험은 연습장에서 하실 수 있습니다.--Xakyntos (토론) 2015년 4월 8일 (수) 14:59 (KST)답변

답변

[편집]

"xakyntos님이 관리하시는거 편집할때는 대립이 되는 내용 편집 해봐야. 돌려버리니 대립이 되지 않는 내용을 토대로만 편집해보도록 하죠. 님이 관리하시는 기자조선을 현재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인정하고 있지 않은데 기자조선 관련해서 다 지워드릴까요?? 저는 그래도 번조선의 맥으로 보고 있기에. 기자 관련해서 그냥 놓아두고 있는데 말이죠.

1. 그렇다면 고조선 부분에. 단군세기 내용을 추가시킨 후, 님이 기자조선에서 취하는 방식처럼. 이 내용은 학계에서는 부정적으로 본다고 적으면 되겠네요?? 2. 삼국유사. 제왕운기는 엄연히 역사책인데 신화타령 그만하시죠?? 그런식으로면 사기를 바탕으로 한 년도수 모두 신화가 되는데요.

그렇다면 질문이 있습니다. BC2333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고학적 발굴로 BC2333까지 증명되면 인정을 하신다는건가요?? 아니면 BC2333 가능성을 닫아두고, 고고학적 발굴이 되더라도 인정하지 않으신다는건가요?? (대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글 작성중이신가요??)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고)조선이 언급되어 있고. 그 지역으로 고고학적 발굴이 나타나고 있는데. 고조선의 실존을 인정하지 않는다는게 논리적으로 맞다고 생각하시나요??"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0일 (금) 12:52 (KST)답변

위서 《환단고기》는 기자조선을 기술하지 않고 있고, 단군조선이 2096년간 지속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규원사화》의 1195년과 901년의 차이가 난다. - 고조선#기타 자료
1. 보시다시피 이미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위서인 《환단고기》에서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가 말입니다.
2. 《일본서기》도 엄연히 역사책인데도 불구하고 기원전 660년 건국설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사기》는 아예 본문 내에서 공화 원년(기원전 842년) 이전의 연도는 믿을 수 없다고 자체 폐기하고 있을만큼 엄정한 역사서입니다. 환단고기 같은 위서와는 비교가 불가능합니다.
3. 사람의 글을 좀 제대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고조선의 실존을 인정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단지 고조선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문헌사료가 적고, 그 한계도 명백해서 정확한 기년이나 왕계보를 알 수 없다는 것이죠. 기원전 2333년을 진실이라 믿으신다면 일본 천황도 기원전 660년부터 시작된 것이고 중국의 삼황오제도 진짜 역사적 사실이라 믿으셔야 할텐데 과연 그렇습니까?--Xakyntos (토론) 2015년 4월 10일 (금) 13:46 (KST)답변

답변에 대한 답변

[편집]

우선 감사드립니다.

1. 환단고기 (2096년), 규원사화 (1195년) 그럼 규원사화는 인정하신다는 것인가요? 단군조선 년대기

단군조선의 일부는 인정한다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2. 일본서기 - 엄연한 역사책(???) 기원전 660년 건국설??? 이것은 해방후 우리의 개천절보고 건국절 기원전 660년 음 1월 1일로 인정할 수 없는 낭설이지요. 단군신화도 없는데, 책에. 단순 일본서기를 믿나요? <사기>가 국제적으로 인정된 사서입니까? 기원전 842년에. 그럼 왜 백제의 왕인박사가 겨우 천자문하고 논어를 전수했을까요? 그렇게 긴 역사인데...

- 질문1. 일본국호의 발음이 저팬입니까? 니혼인가요? 닛뽄인가요? 닛폰인가요? 일본은 일본어, 한문, 영어 등의 각종 언어로 불리는 여러가지 국호를 가지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저팬', '재팬'(Japan) 또는 '자퐁'(Japon)이 가장 많은 언어에서 사용되고 있다. 한편, 일본을 부르는 일본어 명칭은 ‘닛폰’(일본어: にっぽん, 듣기 (도움말·정보)), 그리고 ‘니혼’(일본어: にほん, 듣기 (도움말·정보))이 사용되고 있다. 닛폰과 니혼 모두 일본어의 한자로는 일본(日本)으로 표기된다. 닛폰과 니혼 중 관공서, 체육 행사, 우표 등의 공식적인 행사와 일본 엔에는 닛폰이라는 표기가 많이 사용되고, 니혼은 현대의 회화에서 자주 사용된다.[1]

일본국호 발음

언제부터 니혼이나 닛뽄으로 불리웠나요? 1934년?

저간의 사정을 지금의 <마이니치신문>의 전신인 <도쿄일일신문(東京日日新聞)> 1934년 3월 23일자(석간)에서는 "국호 호칭을 닛뽄으로 통일, 문부성 국어조사회에서 결정"이라는 머리글 아래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문부성 내의 국어조사회에서는 내각과 외무성 요청에 자문하기 위해 조사를 계속해왔는데, 니혼으로 발음하는 것이 문헌적으로 많고 또 (발음하기에도) 부드럽다는 이유로 (니혼으로 읽기를 주장하는) 반대론을 깨부수고 단연코 우리나라를 힘차게 인식하게 할 수 있는 '닛뽄'을 채용하기로 하고, 앞으로는 국호를 '닛뽄'으로 통일하기로 하였음을 내각과 외무성에도 보고했다. 따라서 앞으로는 외국에 발송하는 서류에는 국호를 '닛뽄'을 사용하고 '저팬'은 폐지하기로" 니혼(NIHON)인가? 닛뽄(NIPPON)인가? [권혁태의 일본 읽기] <18> 국호에 담긴 내셔널리즘

기원전 660년부터 일본서기 해서 일본을 국호로 했는데 저팬, 자퐁, 니혼, 닛뽄(뽕)이라고 이것저것 불리나요? 맞는 이야기에요? 국호가 기원전 660년, 아니 기원후 700년에 쓰여져도 자기 국호가 영어로 [지팡구]하는 좋아서 계속 저팬이라고 했을까요?

- 질문2. - 언제부터 왜가 [일본]을 국호로 사용했는가?

국호는 항상 외교적인면에서 문서에서 나타내는 것으로 조선사실록에는 구한말이전에는 왜[倭]를 썼습니다. 신식민주의 근대화론자들인 [임진왜란]을 [일본전쟁] [임진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일제식 사고입니다. 자국의 역사로 [왜란]으로 규정한 것을 굳이 바꾸어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국호의 제정[편집]

일본 제국 헌법 원본에 명시된 국호 정식 국호인 “대일본제국”은 1889년 2월 11일에 발포(發布)된 “일본 제국 헌법”에서 “대일본제국”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에 유래한다. 영어로는 ‘The Empire of Japan’(직역하면 ‘일본 제국’)을 사용했으며 ‘Great Japan’(직역하면 ‘대일본’)으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정부에서는 제국(구자체: 帝國, 신자체: 帝国 (ていこく) 또는 황국(구자체: 皇國, 신자체: 皇国 (こうこく))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당초 일본 제국 정부는 국호에 그리 연연하지 않았고 법률이나 공문서 등에서 일본(구자체: 日本, 신자체: 日本 (にほん)), 일본국(구자체: 日本國, 신자체: 日本国 (にほんこく)), 일본 제국(구자체: 日本帝國, 신자체: 日本帝国 (にっぽんていこく)), 일본국(구자체: 大日本國, 신자체: 大日本国 (だいにっぽんこく)) 등으로 표기했지만 1936년 일본 외무성은 외교 문서에 사용되는 자국의 국명 표기를 “대일본제국”으로 통일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한 뒤에도 “대일본제국”이라는 호칭은 계속 사용되었지만 1946년 2월 13일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일본 제국 헌법 개정 초안을 제시한 뒤부터 헌법 초안에서의 국명은 ‘일본국’(구자체: 日本國, 신자체: 日本国 (にほんこく))이 되었다. 1947년 5월 3일에 시행된 일본국 헌법에서는 주권 재민을 명시했으므로 이후에는 일본 제국이 공식적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일본제국헌법에서 국호를 처음으로 "대일본제국" [일제]라고 했습니다. 1889년 2월 11일 반포. 문제는 영어로도 [The Empire of Japan]이라고 했습니다.

마로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및 잘 아시는 걸리버 여행기에는 [Zipangu, Jipangu]로 명기가 되어있어, 우리도 코리아와 같이 당시 불리던 대로, 즉 서구에 알려진 대로 현재 국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만세일계인 천황님께서, 아니 그래 왜를 재팬이라고 하는데, 일본하시지 왜 안 바꾸셨겠나요. 의문입니다. 아시면, 정확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Names of Japan

영어 위키로 보나, 사서로 보나, 어디에도 왜(倭)를 일본으로 국호로 정한 것은 일본제국헌법 1889년 2월 11일, 그리고 이에 대한 니혼에서 닛뽄(Nippon)으로 해도 그 어느나라도 영문으로 닛뽕이라고 바꾸어주지 않습니다. 한국만 예외로 한번씩 니혼 혹은 닛뽕이라고 하는데, 대세는 니혼고 때문에 니혼이 맍이 쓰이지요. 한국의 경우만 그렇고 영어권 및 세계 어느나라도, 니혼하면 모릅니다. [재팬] [저팬]해야 하지요. 즉 일본이라는 말은 1889년이전에는 국호가 아닌 지방의 명칭이었다 입니다. 백제의 담로국이 백제의 담로로 야마토라고 해서 일본의 이름으로 쓰였는지는 몰라도 국호로 정식제정된 것은 1889년이다. 천세일계라고 하는 것도 그 계보를 잘 모르겠고, 초기내용는 전부 백제왕들의 이야기를 일본말로 각색한 것이 맞지요.

大和 [다이와]라고 읽지요. 倭의 발음과 유사한 [와]를 찾아서 쓴 것이 和입니다. 그러므로, 일본서기는 위서다고 하는 것입니다.

3. 제대로 알아들으세요. 일본의 정상 명칭은요 [재팬]입니다. 일본이 아니고요. 왜냐고요? 우리나라는 외국국가 명칭을 영어식으로 발음을 적도록 수정하였답니다. 유독 일본에 대해서만 친한 척 [일본]이라고 하는데, 아시죠? 동해에 대한 명칭도 "Sea of Sun" or "Sea of Sun-Rising"이 아니고 "Sea of Japan"을 주장한다는 것을. "Sea of Sun, Sun-Rising Sea"는 인정이 될 수 있는 국제해에 관한 협정인데, 국제해역에 대한 명칭을 특정국가명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런데도 재팬은 어떻게 표기하고 있죠? "Sea of Japan"이에요. 그러니 국회에서 일본 국호 변경에 관한 법안을 제출하여 다른 나라와 같이 [재팬] [지팡] [저편] [저팬] 등을 정해서 발음이 어떤 것이 좋은지 정답을 내면 되지요. 절대 왜가 [일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아시죠.. 일본에서 일본은 진주만? 그래서.. 국토회복..

실존자체를 인정한다고 하시니 다행입니다. 그럼, 어디 있었는지도 확인하시고요. 일제침략으로 언제 연해주를 잃었는지, 러시아에게, 왜 두만강과 압록강이 거기에 붙어있는지? 알무르강의 이름은 어디인지? 왜 압록강인지.. 백두산이 현재의 백두산인지? 이순신장군이 백의종군한 녹둔도는 사할린 섬은 아닌지 등등이 의문투성이죠.. 간도는 언제부터 중국땅이었나요? 다 뺏겻으니 역사는 공부하면 안되나요? 해야겠지요.

중국의 삼황오제? 그게 중국제도에요? 우리나라 제도 아니에요? 나는 우리나라 제도로 알고 있는데. 물론 단서대강, 환단고기를 읽어보신 적이 없으니, 아니 자세히 연구를 해본 적이 없으니까 인정하지 못하겠지만, 삼황오제는요.. 우선 환역부터 한번 보세요.

환역 또는 한역(桓易)은 복희씨(伏羲氏,BC3528경 ~ BC3413경)가 만든 역이다. 희역(羲易)이라고 한다.

태호복희씨가 중국사람으로 알고 있지요. 아니지요. 환단고기에 나와요. 태호복희씨는 배달한국의 제5대 태우의천왕의 12번째 아들로 발귀리선인과 동문하였다.그가 만든 역을 희역이라고 한다. 음양오행의 주창자라고 나오는 사람이지요.

음양오행의 오행이 바로 오방제로, 5제를 뜻하는 것은 아니시요?

이 삼황오제는 본 뜻은 삼위일체에서 나와요. 하늘에 원래 천일, 지일, 태일의 삼위가 있는데, 이 위는 조화주, 교화주, 치화주라고 삼위가 있는데 모두 하나다. 하나님이다는 이야기로, 이는 우리는 하나로 하늘의 나로 중양지종으로 [북극성]안에 삼성이 있다. 뜻은요, 대덕, 대혜, 대지하신 3위입니다. 위는 하늘위 하늘의 하늘위로 상제라고 하지요, 상은 하늘의 하늘위고 제는 5제입니다. 즉 상제는 皇입니다. 천황할 때 그 황이지요. 삼위에서 삼황이라고 하는 천황,지황,인황이 나오지요...

다음이 천에는 삼황이계시고, 그 아래에 천하는 오제가 그리고 지하(땅)은 오령이 다스린다. 이건 신화이야기에요...

오제는 오방색으로 오방제지요. 흑제, 적제, 청제, 백제, 황제가 천하, 즉 우주공간의 우주의 별과 행성을 다스린다에요...

이 이론이 음양오행이고요.

이것은 마고시절부터 내려온 것을 발귀리선인이 7정이라고 해서 오령(오행)에 넣어(이유는 천하이니까 오령) 일월(음양) 수화목금토(오행)으로 7요일법이 7회제신력으로 우리가 현재 쓰는 태양력이 되었답니다.

3황5제를 이 지상에 내려오면서, 중국이야기를 하면 그 다음이고,

우리는 역사의 시대변화에 따라, 3황이 달라지는데, 단군조선전에는 안파견 환인, 거발환 환웅, 치우천왕을 3황이라고 했다가, 단군조선후에는 아버지 안파견 환인, 스승님 거발환 환웅, 임금님 왕검 단군이라고 삼성(삼황)으로 조화황, 교화황, 치화황이라고 했습니다. 5제의 제도는 지방관 제도로, 바로 5가 제도지요, 이는 윷놀이판에 도개걸윷모로 부족 5가를 넣었다는 것. 도야지, 개, 양, 소, 말. 그러니 모의 몽골은 우리부족이지요, 걸은 거란이고요...

즉 중국제도가 아니니니 티우를 넣었다가 말았다가 하고요. 우리는 3성각에 환인, 환웅, 단군 세분이 바로 천황, 지황, 인황으로 조화황,교화황, 치화황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군사부 일체, 삼황일체다는 내용이 정확하게 전합니다.

아 참.. 오제는 천하를 다스리는 임무가 있어서 천하대장군이라고 하고요, 오령은 지하대장군이라고 해서 장승제도가 마고시절, 즉 1만년전부터 있던 가장 오래된 장승문화입니다.

감사합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0일 (금) 15:20 (KST)답변

토론은 이곳에서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쓸데없이 제 토론 문서까지 찾아오실 필요 없습니다.
1. 규원사화도 위서로 취급되고 있습니다만.
2. 일본서기를 믿지 않습니까? 그럼 환단고기도 믿지 마세요. 단군신화도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공정한 시각 아닙니까? 환단고기, 단군신화는 우리 역사니까 믿고 일본서기, 사기는 우리 것이 아니니 믿지 않는다는 건 어느 나라의 학문 연구 방법입니까? 똑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일본서기, 단군신화, 사기 어느 것이든 역사학적으로 사료 비판을 거쳐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 민족을 위대하다 적었다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 민족의 적대국이기 때문에 못믿는 것이 아닙니다. 사료를 믿고 안믿고는 학문적 연구를 거쳐 판단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외국국가 명칭을 영어식으로 발음을 적도록 수정하였답니다.

3. 아이티라고 아세요? 요르단이라고 아십니까? 타이, 미얀마, 기니 등등, 공식 국명을 영어로 읽지 않는 예를 셀수도 없이 들어드릴 수 있습니다만.
4. 이런 터무니없는 괴설들을 아무리 써봤자 위키백과에서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귀하께서 하실 일은 여기서 출처조차 알 수 없는 괴설들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역사학계에서 그런 주장들을 공인 받는 일입니다. 물론 그런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겠지만.--Xakyntos (토론) 2015년 4월 10일 (금) 15:35 (KST)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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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국이 이름을 고쳐 일본(日本)이라 하였는데, 스스로 ‘해 뜨는 곳에 가깝기 때문에 그리 이름하였다.’고 말하였다. - 《삼국사기》〈문무왕 상〉10년 12월 기사

1. 증거는 이것이면 됩니까? 1889년이요? 나원참.
2. 솔직히 이런 것까지 아시길 바라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하도 괴설을 늘어놓으니 말씀드립니다. 왜, 아마토, 일본 등의 국명은 모두 같은 발음을 가진 일본 고유어를 음차한 것입니다. 과거 임나일본부를 비판할 때 사용했던 논거로서 일본이라는 국명이 670년에 처음 등장했으니 그 이전에 일본부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있는데, 현재 학계에서는 아무도 그런 식으로 비판하지 않습니다. 일본이라는 국명이 670년에 등장했든 아니든 상관이 없거든요. 고대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을 제외한 외국들은 모두 고유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고유 명칭을 한자로 음차 혹은 훈차해서 사용했습니다. 마찬가지의 같은 비판을 적용하면 신라 역시 503년 지증왕이 신라라는 국호를 정하기 이전에 신라가 없었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사로, 사라, 서라벌 신라 같이 모두 같은 고유 명칭을 음차한 국명이 혼용된 것이며, 일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일본이 왜국이라니 하는 망언은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3. 환단고기는 위서입니다. 삼신개벽기는 뭔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특정 종교의 경전이나 교리서 같군요. 역시 역사학적으로 전혀 인정되지 않는 괴설입니다. 물론 삼황오제 역시 신화일 뿐 역사가 아닙니다. 게다가 신화인 삼황오제를 위서인 환단고기 따위를 근거로 역사화하는데다 우리 민족 것이라 뒤바꿔 놓는 행동은 역사적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낭설입니다. 귀하가 그런 것을 믿고 계신 것은 알바 아니나 위키백과에서 그런 낭설이 용납되리라 생각하셨다면 큰 오산입니다. 귀하가 아무리 장광설을 늘어놓아봤자 위키백과에서는 하나도 인정되지 않습니다.--Xakyntos (토론) 2015년 4월 10일 (금) 16:33 (KST)답변

일본은 해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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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에 "천지현황"하니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고 해석이 되는데, 이게 오제에요. 북은 수로 현이고, 지는 중앙방위라 황제가 다스림하니 누를 황이에요. 천자문은 백제 왕인박사가 왜에 전해주었다는 것은 아시죠?

그런데, 과학적이지도 않고, 합리성도 없고 歪라서 倭라고 한 거예요..

우리는 다 아는 진리에 대한 이야기를 왜는 일본이라고 해나라 하고는 정작 해의 색을 몰라요.. 빨강이래요..

일장기: 아까이 히노마루 (빨간 해).. 마루(丸)은 다음에 이야기하고 저게 桓이라고 말하죠 요즘에. 함선에다가 이름에 전부. 웃기죠. 정로환(러시아를 정벌하는 환, 탄환).. "일본의 국기는 일장기(일본어: 日章旗 닛쇼키[*], 영어: Flag of Japan)를 의미하며, 히노마루(日の丸, '해의 원')라고 부른다. 일본의 국기 및 국가에 관한 법률의 규정에 의하면, 국기의 형태는 가로 세로 비가 3대 2인 직사각형이며, 가운데 동그라미의 지름은 세로의 5분의 3으로, 중심은 기의 중심에 위치한다. 바탕은 흰색, 가운데 원은 빨간색이다."

요즘에는 이상하게 제대로 교육을 안하고 있지요. 해의 색은 하양입니다. 다 아는 이야기. 우리는 태양의 자손으로 하늘의 자손으로 하양의 자손이다. 하양은 해의 색으로 백(白)이다 즉 삼황오제할 때 삼황일체는 하양입니다. 우리는 색상도 5방색이 고유어입니다. 하양-검점-파랑-빨강-노랑.. 색동저고리. 5방색에 5간색이 있지요. 무지개는 빛(태양)이 프리즘할 때, 즉 태양은 빛의 덩어리에요. 그래서 빛의 삼원색은 "하양"이고요, 색의 삼원색은 "검정"이에요. 하양과 검정이 바로 음양기에 들어가는 양과 음이기도 합니다. 하양은 공이라고 하고 검정은 색이라고 하지요. 공즉시색, 색즉시공.. 이런 도학도 아니 기본 과학을 우리는 아예 한문으로도 백(白)하면 천자문만 띄어도 아는 해(日)의 주인(主)-색은 "하양" 그래서 하양, 해의 양(색). 하늘색도 하양.. 누가 그러지요, 청전백일기 청나라기인데 청일전쟁에서 청은 해를 하양으로 그려서 왜넘 빨강 해한테 졌다고 맞아요. 전쟁, 피, 불의 색은 빨강이에요. 태야은 전쟁이 아닌 평화입니다... 그래서 항복기를 걸고 나갔으니 졋죠.. 아시죠? 우리는 무슨색을 입고 싸운다. 붉은 악마, 치우천왕기, 땅의 광명을 이야기한다. 혹은 검은 까마귀, 조의선인, 훈족의 검은 한기마대.. 검은 기사...

문제는 일본하고는 해라고 하고는 "아까이 히노마루" 하지요. 거짓이죠. 이것 왜마기라고 해요. 지옥의 표상이 빨강 탄환으로 탄환으로 피를 본다는 것이지요. 해는 햐양이에요. 과학이에요, 거짓이 아니고...

이것은 해방되고 바로 노래가 나왔어요. 얼마나 분하ㅗ 원통했으면, 제일 높은 산은 후지산이 아니고 백두산이다. 우리는 다 알지요. 말잇기 동요.. "원숭이 엉덩이"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빨가면 사과....

원숭이 엉덩이( 대한의 노래 )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 삼천리 무궁화 이강산에 역사 반만년, 대대로 이어 사는 우리 삼천만 복되도다. 그 이름 대한 이로세

삼천리 아름다운 이내 강산에 억만년 이어 나갈 배달의 자손 길러온 힘과 재주 모두 합하니 우리들의 앞길은 탄탄하도다.

보아라 이 강산에 날이 새나니 삼천만 너도 나도 함께 나가자 광명한 아침해가 솟아오르니 빛나도다 그 이름 대한이로세.

이 노래는 원래 왜를 빗대어 노래한 거에요. 해는 하양인데, 천자문이나 모든 과학책에 그리고 우리가 태양자손으로 백의 민족이라고.. 白 일장기라고 하고는 전쟁이다 모다 착취당하고 나서 보니, 저거 해가 아니다. 저건 왜마귀, 죽음의 상징.. 그런데, 원숭이 똥.. 아니 엉덩이는 빨갛더라. 그래 왜놈 엉덩이를 그렸구나.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높으면 백두산.. 백두산 뻗어내려...

자, 이게 일본이 왜인데 공부를 못해서인지, 아니면 천자문을 그리도 수도 없이 가르쳤는데도 모른다. 그래서 歪다. 아이들 교육에 정말 나쁜 거에요. 해가 빨강이면,사과가 빨강이지.. 어떻게 원숭이 엉덩이라고 해를 그리냐고요. 그것도 일본이라고 히노마루하면서.. 피바다 된 뒤에 어이 알겠나. 일장기 보면 원숭이 온다. 튀어라..

이게 일본은 한자도 모르고 철학도 없고, 하옇튼 그래요.. 원숭이 엉덩이가 빨개요. 해는 하양이에요.. 명심 명심 하세요. 말잇기 노래하고는 저게 왜 '대한의 노래'인지 가르치고 있나.. 요즘은 영.. 잘..

감사합니다.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0일 (금) 16:38 (KST)

답변 일본?

[편집]

토론은 이곳에서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쓸데없이 제 토론 문서까지 찾아오실 필요 없습니다. 1. 규원사화도 위서로 취급되고 있습니다만. 2. 일본서기를 믿지 않습니까? 그럼 환단고기도 믿지 마세요. 단군신화도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공정한 시각 아닙니까? 환단고기, 단군신화는 우리 역사니까 믿고 일본서기, 사기는 우리 것이 아니니 믿지 않는다는 건 어느 나라의 학문 연구 방법입니까? 똑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일본서기, 단군신화, 사기 어느 것이든 역사학적으로 사료 비판을 거쳐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 민족을 위대하다 적었다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 민족의 적대국이기 때문에 못믿는 것이 아닙니다. 사료를 믿고 안믿고는 학문적 연구를 거쳐 판단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외국국가 명칭을 영어식으로 발음을 적도록 수정하였답니다. 3. 아이티라고 아세요? 요르단이라고 아십니까? 타이, 미얀마, 기니 등등, 공식 국명을 영어로 읽지 않는 예를 셀수도 없이 들어드릴 수 있습니다만. 4. 이런 터무니없는 괴설들을 아무리 써봤자 위키백과에서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귀하께서 하실 일은 여기서 출처조차 알 수 없는 괴설들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역사학계에서 그런 주장들을 공인 받는 일입니다. 물론 그런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겠지만.--Xakyntos (토론) 2015년 4월 10일 (금) 15:35 (KST)

1. 규원사화도 위서다.. 알겠습니다. 2. 일본서기가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지요? 일본 국호는 언제부터 사용했는가? 질문을 했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1889년이므로, 무슨 기원전 660년 건국하는 것은 일본이라는 국호를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려고 하는 것일 뿐으로, 국호를 왜[倭]에서 언제 일본이라고 썼느냐 입니다. 일본이라는 뜻도 모르면서. 단군신화라고 하는데 왜 왜의 왕이 천황을 쓰는가? 무슨 뜻인 줄을 아는가? 皇은 백왕으로 백의민족의 빛 왕이다, 당나라가 이세민이 도교를 자신의 선조 노자 이 이를 국교로 하고 그것을 가져다가 쓰면서, 여와신을 여왜[女倭]라고 했다. 그러니 당나라에서 왜로 간 백제귀족, 공주의 시가가 천황으로 무당왕이 되었다. 그러나 집권왕이 되지 못하다가 미국의 강화조약으로 에도막부가 무너지고 메이지 유신으로 득세하면서 일본이라는 말이 좋아보여서 쓰기 시작했다. 아니면 증거를 가져다가 내라는 것을 질문으로 드렸습니다. 단순 위대하다 아니다를 말한 것이 아니지요. 3. 국명. 이전에는요. 덕국, 미국, 불국, 등 한자로 국명을 쓰다가 현재는 가능하면 국제통용 영어로 물론 외국말로 다른 언어의 발음나는 대로 적는 방식을 쓴다입니다.

나라 이름의 한자 표기 목록

현재 외무부 통상국 등 외국국명은 가능하면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발음나는대로. 그러나 영국, 독일, 미국, 중국, 왜만은 일본으로.. 몇 나라만 과거 한자표기를 병용사용하고 있습니다.

나라 목록

왜[倭]라고 한 이유는 영어표기는 Japan이고 일본의 영어표기는 "Japan"입니다. 재팬의 원 뜻이 왜[倭]기에 왜라고 하지 않으므로, 그리고 일본은 해가 아니므로, 일이라고 해줄 이유가 없다입니다. 하도 장난질을 많이하니까.. 동해도 지네 바다, 독도도 지네 섬이라고 하니까. 아니되겠다는 것이지요. 원래 왜를 왜로 환원 그러나 국가간 도모해야 할 일도 있으니, 점잖게 [재팬] [저편]으로 해서 불러주면 된다이지요. 다른 뜻은 없습니다. 뭐 그렇게 왜역사를 외울 필요는 없으니까요. 다 아는데 뭐.. 니혼고. 아까이 히노마루.

4. 뭐가 괴설? 삼위일체 상제설? 음양오행설? 오방설? 누구처럼, 천지현황, 하늘의 검지 않고 푸르다고 한 것이 아닌데, 더 물어볼 것이 있으면 물어보세요. 삼황오제는 우리나라 삼신의 이론이지요. 그건 환단고기, 삼신개벽기 등에 다 나오는 이야기지, 실제 무슨 오방제가 있다고 한 것이 아니에요. 우리나라 윷놀이에 나온 "도개걸윷모"가 5제랍니다. 오방제, 오방색.. 이게 무슨 공인 받을 것도 아닌데, 다 알던데. 오행색, 오방색.. 천하대장군은 오제다, 흑제, 적제, 청제, 백제, 황제다.. 불교에도 황(부처님), 4천왕상. 5대천왕상.. 다 있는데, 뭐 이걸 꼭 중국애들 황제로 외워야 하나요? 내용이 나와 관련된 사항이 아니니, 위키백과의 토론과정을 위해서..감사합니다.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0일 (금) 16:09 (KST)답변

왜는 왜지 무슨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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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토론 문서로 찾아오실 필요 없습니다. 이곳에 쓰십시오. 왜국이 이름을 고쳐 일본(日本)이라 하였는데, 스스로 ‘해 뜨는 곳에 가깝기 때문에 그리 이름하였다.’고 말하였다. - 《삼국사기》〈문무왕 상〉10년 12월 기사 1. 증거는 이것이면 됩니까? 1889년이요? 나원참. 2. 솔직히 이런 것까지 아시길 바라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하도 괴설을 늘어놓으니 말씀드립니다. 왜, 아마토, 일본 등의 국명은 모두 같은 발음을 가진 일본 고유어를 음차한 것입니다. 과거 임나일본부를 비판할 때 사용했던 논거로서 일본이라는 국명이 670년에 처음 등장했으니 그 이전에 일본부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있는데, 현재 학계에서는 아무도 그런 식으로 비판하지 않습니다. 일본이라는 국명이 670년에 등장했든 아니든 상관이 없거든요. 고대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을 제외한 외국들은 모두 고유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고유 명칭을 한자로 음차 혹은 훈차해서 사용했습니다. 마찬가지의 같은 비판을 적용하면 신라 역시 503년 지증왕이 신라라는 국호를 정하기 이전에 신라가 없었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사로, 사라, 서라벌 신라 같이 모두 같은 고유 명칭을 음차한 국명이 혼용된 것이며, 일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일본이 왜국이라니 하는 망언은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3. 환단고기는 위서입니다. 삼신개벽기는 뭔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특정 종교의 경전이나 교리서 같군요. 역시 역사학적으로 전혀 인정되지 않는 괴설입니다. 물론 삼황오제 역시 신화일 뿐 역사가 아닙니다. 게다가 신화인 삼황오제를 위서인 환단고기 따위를 근거로 역사화하는데다 우리 민족 것이라 뒤바꿔 놓는 행동은 역사적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낭설입니다. 귀하가 그런 것을 믿고 계신 것은 알바 아니나 위키백과에서 그런 낭설이 용납되리라 생각하셨다면 큰 오산입니다. 귀하가 아무리 장광설을 늘어놓아봤자 위키백과에서는 하나도 인정되지 않습니다.--Xakyntos (토론) 2015년 4월 10일 (금) 16:33 (KST)

왜국이 이름을 고쳐 일본(日本)이라 하였는데, 스스로 ‘해 뜨는 곳에 가깝기 때문에 그리 이름하였다.’고 말하였다. - 《삼국사기》〈문무왕 상〉10년 12월 기사 1. 증거는 이것이면 됩니까? 1889년이요? 나원참. 삼국사기 이병도가 다 고쳐놓지 않았어요? 삼국사기에 문무왕 상 10년이면, 백제가 패망하고 백제황족이 일본에 도착했다. 그리고 스스로 일본이라고 불렀다. 그 이야기 하는 것이네요. 그러니 일본은 백제의 담로국이었다고 하잖아요. 담로국의 한 속국. 그거 아니에요? 삼국사기 문무왕시절에, 백강전투에서 왜함선 400척이 백강에서 몰살당했다. 다시는 백제부흥운동에 참여할 여력이 없었다. 그리고 당에 볼모로 잡혀간 귀족 목씨는 소가씨고, 이들이 왜에 가서 왜 천황(당나라 문물)과 신교에 도교를 합쳐 신도교를 만들었다. 이 때부터 정한론이라고 해서, 이빨을 뽀두둑 갈았다.. 그런 이야기네요..

자, 일본의 역사에 일본이 나오는 것은 1889년이고 메이지유신부터 부르기 시작했다.

일본의 역사 구석기 시대 35,000~14,000 BC 조몬 시대 14,000~300 BC 야요이 시대 300 BC~250 AD 고훈 시대 250~538 아스카 시대 538~710 나라 시대 710~794 헤이안 시대 794~1185 가마쿠라 시대 1185~1333 겐무 신정 1333~1336 무로마치 시대 1336~1573 난보쿠초 시대 1336~1392 센고쿠 시대 1467~1573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1568~1603 에도 시대 1603~1868 막부 말기 1853~1868 메이지 시대 1868~1912 메이지 유신 다이쇼 시대 1912~1926 쇼와 시대 1927~1947 군정기 1945~1952 헤이세이 시대 1989~현재 잃어버린 10년 1991~2000 일본 제국 (전쟁 전) 1868~1947 일본 (전쟁 후) 1945~현재 일본의 과학사 일본의 경제사 일본의 정치사 일본의 대외 관계사


일본제국 (1868-1947) : 메이지 유신까지 포함. 그전에 언제 일본을 썼나요..

영문판

History of Japan

어디에도 없는 국호라고. 그냥 국가가 아니니, 시대라고 했나? 전국시대. 왜 춘추전국시대. 에도막부라고 하니 일본이라고 하지 않았는데, 16세기 임란때 기독교선교사들이 조총되었을 때도 한번도 니혼이나 닛뽕이라고 한 적이 없이 재팬, 다이와라고 했지요.

참고로,

진단] ‘일본(日本)’이라는 국호, 백제와 왜(倭) 중 누가 먼저 사용했을까? 처음 사용 시는 ‘해 뜨는 동쪽의 나라’라는 방위 개념!

내참? 무슨 소리하고 있는지? 일제, 일본제국이 위대하다고 하는 이야기는 오늘 처음 듣네. 다들 왜지 일본은 무슨.. 이라고 하는데. 참으로 이상하네. 오늘 정말 이상하네. 치과문 닫았지.. 아마..

2. 솔직히 이런 것까지 아시길 바라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하도 괴설을 늘어놓으니 말씀드립니다. 왜, 아마토, 일본 등의 국명은 모두 같은 발음을 가진 일본 고유어를 음차한 것입니다. 과거 임나일본부를 비판할 때 사용했던 논거로서 일본이라는 국명이 670년에 처음 등장했으니 그 이전에 일본부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있는데, 현재 학계에서는 아무도 그런 식으로 비판하지 않습니다. 일본이라는 국명이 670년에 등장했든 아니든 상관이 없거든요. 고대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을 제외한 외국들은 모두 고유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고유 명칭을 한자로 음차 혹은 훈차해서 사용했습니다. 마찬가지의 같은 비판을 적용하면 신라 역시 503년 지증왕이 신라라는 국호를 정하기 이전에 신라가 없었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사로, 사라, 서라벌 신라 같이 모두 같은 고유 명칭을 음차한 국명이 혼용된 것이며, 일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일본이 왜국이라니 하는 망언은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망언? 뭐가 망언이에요. 왜국을 왜국이라고 하는데, 지금 왜식으로 하자고 말하는 것인지. 이야기 했지요. 670년에 왜가 갑자기 일본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백제왕족과 귀족이 당의 장안에서 왜로 도착하면서라고. 이 때 일본이라는 말을 쓴 것은 그곳이 백제의 담로국이었기 때문이라고. 즉 담로국이므로 백제에서는 일본, 해가 뜨는 곳이라고, 왜 일본이라고 쓰지 못하느냐? 일본은 일을 히라고 해요. 본은 토고요. 혼이 아니고 히토라고 하면 덴노하고 같은 말이되고 덴노는 흉노하고 같지요. 야마토, 대화(大和) 이걸 자꾸 일본이다고 하는데 이것은 大倭와 같은데, 발음만 음차로 [와]라고 나는 和로 바꾼 것이라고.. 야마토는 일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야마는 이마, 머리, 태양이라고 하고 토는 본의 원 왜의 발음가에요. 그러나 이를 山本(야마토)로 셋본, 즉 세본으로 사람의 중심으로 원래는 백제가 아니고 신라의 중심지였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백제 귀족이 가자마자 정권을 잡았다고 하는 속설이 있는데, 그건 아니고요, 왜땅에는 고구려/신라가 더 강력하고, 백제도 담로국이 있어서 좋았는데, 전체를 다 장악하지 못해요. 그래서 왜 전국시대로 각지방 호족이 있다가 토요도미 히데요시(풍신수길)이 전국통일하고, 십자가전쟁이라고 해서 기독교 기리사단 이 앞장서서 조선을 침략했고요. 이 기리사단 기독교 앞잡이는 얼마나 악랄했는지, 귀를 베어오라고 했는데, 그럼 살게 되니까 코를 베어간 것이죠. 그래서 어비. 코비어간다고 해요. 잔인하기ㅣ 그지 없어요. 근데 힘을 못 길러서 병자호란후.. 흐지부지하다가 왜땅에 관심이 없었던 조선은 미국이 왜[재팬이라고 명기가 되어있다]를 압박해서 강화조약을 맺으면서 왜에 일본천황가가 등장했지 무슨 맹목적으로 맹주는 아니다. 지금 조금 이상해요. 알고 있지요? 신라는 당신이 생각하듯이 백제 왜한테 꼼작 못하던 나라가 아니에요. 신라의 神羅로 원 진한조선이에요. 우리말에는 전 아버지 이름을 밟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어요. 그래서 후금의 신라자손들은 청(靑)이라고 했다가 배달천왕 치우천왕이 산동에 [청구 -푸른 언덕, 이 땅의 하늘]을 쓰셔서, 바로 맑을 淸(청)을 썼다는 청사에도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왜가 독도는 자기 땅하고 교과서에도 실고 있으므로 당연히 재팬이라고 국호를 표기를 바꾸어야 전쟁광 빨간 해가 돌아다니지 못합니다. 지팡이 후지가 휘어져서 후지후지 Cane (藤)이 뿌러집니다. 자팡아 자팡아.. 뿌러질래 휠래. 휜다고 해서 등나무 후지.. 후지다. 우리말이 먼저인데.. 내 참.. 일본부는 백제에 보고소가 설치되어 있었겠지.. 그래야 왔다갔다하고. 백제는 호남이 아니에요. 아시죠..산동 제남위가 백제에요.. 마치 동네전쟁하든 한달에 28개성을 함락했다. 그럼 하루면 말달려서 가서. 신라를 깨부수지.. 삼국사기에도 나와요.. 백제 최강시 100만군대라고.. 그럼 신라가 경상도에서 오골오골 살면서.. 야호 했나.. 그리고 왜 천황가의 핏즐이 백제라면서 "오소 오소 어서 오소 아재 아재 어서 오소'라고 신라말을 쓰남.. 내 참. 무슨 아는 애하고 이야기해야지, 무슨 임나일본부 이야기를 들고 나오니. 정말.. 내 참.. 정말, 왜는 왜야.. 왜...

3. 환단고기는 위서입니다. 삼신개벽기는 뭔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특정 종교의 경전이나 교리서 같군요. 역시 역사학적으로 전혀 인정되지 않는 괴설입니다. 물론 삼황오제 역시 신화일 뿐 역사가 아닙니다. 게다가 신화인 삼황오제를 위서인 환단고기 따위를 근거로 역사화하는데다 우리 민족 것이라 뒤바꿔 놓는 행동은 역사적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낭설입니다. 귀하가 그런 것을 믿고 계신 것은 알바 아니나 위키백과에서 그런 낭설이 용납되리라 생각하셨다면 큰 오산입니다. 귀하가 아무리 장광설을 늘어놓아봤자 위키백과에서는 하나도 인정되지 않습니다. --

황당하구만, 정말, 노자의 도덕경도 공자의 주역도 못 읽었다는 이야기.. 맞지요. 유교의 경전이지 참.. 주역이.. 아니 살면서 왜넘처럼 오방색도 모르고 삼황오제의 오행색도 모르고 이걸 특정 종교의 경전이나 교리서라고. 누구 닮았나? 천자문, 천지현황하니까 왜 하늘의 검소.. 파랗지? 왜넘 선생한테 따졌다고 1천년래 최대의 창조인 탄생이라고..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삼황오제의 명칭 흑제, 적제, 청제, 백제, 황제라고 진짜, 오제가 사람이름으로 중국애들이 넣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요?

삼황오제

"삼황오제 신화의 기본 틀이 되는 상고대 시조 설화의 원형은 상나라 무렵부터 이어져 왔다. 그리고 춘추 전국 시대에 제자백가가 각종 사상을 주창하고 제후들에게 유세하면서 삼황오제 신화가 창조되어 틀을 갖추어 나갔다. 오제 신화의 경우 음양오행설이 유행한 이후에 5명의 제왕이 신화로서 정립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후대에 재창조된 신화이기 때문에 삼황과 오제의 구성원은 제자백가의 주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춘추 전국 시대에서 위진남북조 시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삼황오제 신화는 계속 재창조되었다"

내가 만들어냈다고 하네. 음양오행, 삼황오제이야기를. 오방제라고 해서 하늘의 신화이야기. 그리고 재창조되기에 천차만별로 이는 5가제도로 우리 상고사에서는 5가의 부족간의 지방행정조직, 호족이라고 하는데 5가, 7가, 9가로 늘어나요. 뭐 상고사의 실력을 알만 하네요. 그래가지고 어떻게 위키백과에서 인정, 불인정을 말하나.. 삼황오제 치기만 해도 되는데.. 유세를 떨기는..

그게 경전이나 교리가 아니고, 주역, 역법이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도 모르네. 환역도 모를 것이고, 이순지의 칠정산 내외편도 모르고,아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즉 역사서에서.. 신라의 국학.. 그래서 우리나라 국학원, 민족교육단체, 전통 민속과 나라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국학원.. 모르네.. 믿고 안믿고가 아니고 고대사, 상고사에서는 신화와 역법, 4서3경(혹은 5경)정도는 알아야지.. 도덕경에 왜 무위자연해놓고는 헛소리했는지? 당나라-왜로 이어지는 여왜 ,신또교도 알 수 있고.. 아닌가? 요즘에는 대충 인터넷으로 써치해서 논문쓰면 되나보네요. 참 좋은 세상이다. 쓸데없는 역사책 읽고 음양오행 알고, 명리학 사주팔자까지 배운 나도 모르긴 마찬가지지만, 이건 뭘 말하는지. 일본이라고 하지 말고, 왜도 아니고 재팬[Japan]이라고 하자고 했더니 망발이래네.. 허 참.--Canendo (토론) 2015년 4월 10일 (금) 17:51 (KST)답변

삼국사기가 무슨 옆집 순이가 쓴 일기장인줄 아시나요? 이병도한테 맨인블랙의 기억력 제거장치라도 있지 않는 한 삼국사기를 고쳐쓰진 못합니다. 증거를 제시했더니 이병도가 고친 거냐니... 하다못해 《일본서기》만 해도 720년에 편찬된 것입니다. 일본서기도 이병도가 조작한 건가요? 1889년이요? 이거야 정말 상대할 힘이 쫙 빠지게 만드는군요. 나머지 내용도 상대할 가치가 없습니다. 저야 말로 귀하께 말씀드리고 싶네요. 이건 대체 뭘 말하는 것인지.--Xakyntos (토론) 2015년 4월 10일 (금) 20:11 (KST)답변

삼국사기가 무슨 옆집 옆구리 터진 소리했나요? 해석을 그렇게 했다는 것이지. 지명도 모르는 곳이 그리 많고, 아니 일본자국 및 영어판에도 역사시대구분에도 일본이라고 한 적이 없는데 문무왕때면 백제패망후 부흥운동하고 백제 유민이 왜에 도착했을 때, 일본서기에는 지명으로 일본에 도착했다고 나오는데, 그게 무슨 국호라고 하느냐는 것이지요. 그리고 천황가가 세워지고 무당천황이긴 하지만 단군임금은 아니지 않았나요? 마치 천황하니까 임금이라고 하는데, 천황은 제천장이라는 의미지 임금이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제정일치 우리 상고사에서는 그렇게 나와도, 천황가가 언제 군왕이 되었느냐?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막부대신, 왕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국호를 일본으로 하자 해서 1889년 헌법을 반포한 것이지요. 삼국사기 한 도막으로 지방 군수가 일본이요 한 것이나, 백제의 원 지명이 일본인 것이나 '국호'는 나라로 인정하고 그 국가가 제대로 굴러가서 외교문서나 역사서(외국)문서에 일본으로 나와야지 인정합니다. 조선사실록에는 1868년이전에는 왜를 왜라고 했지 일본(지명빼고)이라고 국호로 인정한 적이 없고 나와 있지 않습니다. 상대는 봐가면서 해야지 어린 사람이 무슨 강단교수라고 무슨 역사학회에서 대단한 자리에 있는지는 몰라도, 문제가 심각합니다. 일본 국호도 좋지만, 취지는 그러한 것이 아닌데 마치 일본이라고 하든 말든, 영어로 재팬[Japan]으로 해야, 무슨 태양도 아닌 빨강기가 태양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고 야릇하고 정말 싫습니다. 이 민족사에 치욕이고 최대의 적은 무쓰히토 천하에 역천자로 우리역사서에 써놓아야 하고, 히로히토 전범자에 대해서도 우리의 역적으로 명시를 해서 가르쳐야 제3의 전범자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 한국국사교과서에 대한민국의 주적은 무쓰히토, 히로히토라고 명시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상대를 하든 말든 어린 선생과 말싸움할 생각이 없습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0일 (금) 20:29 (KST)답변

별로 상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하도 파천황적인 낭설 속에서 살고 계신 것 같아 간단하게 하나만 반박해 드리겠습니다. 조선왕조 실록에 나온 일본 기사만 해도 5,556건이나 되는데 이건 국호가 아니고 뭐란 말입니까? 《신당서》〈동이전〉 일본 條에도 똑같은 기사가 있습니다. “惡倭名, 更號日本. 使者自言, 國近日所出, 以爲名.”해석은 하실 수 있으시겠죠? 대체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하면 1889년에 일본 국호가 처음 생겼다는 낭설을 믿을 수 있는 거죠?--Xakyntos (토론) 2015년 4월 10일 (금) 20:41 (KST)답변
뉴라이트 사관이군요. 왜 말고 재팬으로 하란 말을 이해하지 못하세요. 日과 日本은 다른 말인 건 아시죠. 우리나라 이름이 동국, 동방, 동이 등으로 국호가 아니 일반적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것은 인정하시죠. 東 동녁 동이 무슨 뜻이지도 아시지요. 동은 日木입니다. 사람들은 이게 해가 나무에 걸린 모양이다하지만, 원래 동녁 동이라고 정한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북방(북극성)에서 온 수정자, 즉 북에서 천신강림하시고 천손자손강림한 민족이다. 우리는 태양을 숭배하는 태양족이다. 그래서 옳은 쪽은 동쪽이다 동은 북극성을 향해 (해가 아니고) 해가 뜨는 쪽이 읋은 쪽이다, 오른쪽의 어원이고요, 이 때 이미 우리가 쓰고 있던 일목(즉 일본)이라는 한문 東이 된 것입니다. -東의 유래, 즉 日이면 日이라고 하지 日本이라고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즉 東하면 일본인데 무엇때문에 일본이라고 쓰느냐하는 것이지요. 일본하면 우리민족의 동방으로 본 뜻은 방향이 아니고 해의 본이라는 뜻이고 이를 모르는 재팬은 일의 환(알) 태양의 자손이라고 해서 환(桓)에서 그 자손이라는 환(丸)이라고 했습니다.

1. 조선왕조실록에 나온 일본기사는 현재 번역본을 말씀하신 것이고, 그 내용에는 倭, 倭寇 왜국이 나오고, 일본이라고 하는 말은 지명 혹은 군사를 말합니다. 일본郡, 일본軍이라고 임진왜란 때 일본이라는 군현에서 왔다 물자수송이 되고 있다는 등의 표현이지 국호로 쓰인 경우가 없습니다.

임진왜란을 임진전쟁으로 바꾼 뉴라이트 역사학계 당시는 침략해온 왜적일 뿐, 일본이란 표현은 적절치 않다.

왜가 자기자신을 일본(일)이라고 표현해도 조선의 입장에서 왜를 일본이라고 받아준 적이 없다는 내용입니다. 비록 역사란 아와 피아의 관계를 기록하나, 무릇 아의 역사를 위주로 해야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일본은 왜가 자신들을 높이기 위함이지 외교관계상 일본이라고 국호를 인정해주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다. 즉 [임진왜란]이라고 이름한 것을 [임진전쟁]이라든지 [임진일란]으로 바꾸자는 것은 뉴라이트 일설이지 정사가 될 수 없습니다. 조선왕조실록 등 조선정부에 의한 기록을 토대로 역사를 본 다음, 이에 대한 비평과 비판을 정사와 야사로 나누어 쓸 수는 있어도 모든 이가 알고 있는 [임진왜란]을 겨우 몇번에 걸쳐 나온다고 해서 해국이나 태양국으로 불러줄 수 없슴은 일본은 바로 동국이기 때문입니다. 東의 본 뜻이 일본으로 해의 본은 동이라는 개념도 없이 일본을 태양이라고 하는 것은 빨강이 해다, 해의 색상은 빨강이라고 알리는 것은 진리, 세상의 모든 과학과 이성을 歪曲하는 것으로 빨강해가 일본이라고 한다면, 日은 하양이므로 일본은 倭라는 지명의 지칭으로 日이라는 말과는 다르다는 것을 정해야 합니다. 이에 일과 일본, 동의 관계가 정립이 안된 관계로, 일본이라는 의미가 빨강해라는 의미라면, 矮小星(dwarf star, 마지막 불꽃-빨강색-을 뿜어내는 별)을 숭배하는 일의 뽕이라면 그리 정하여 알리라고 하면 됩니다. 빨간 해는 태양의 마지막이라는 뜻으로 가장 높이 뜨고 강렬한 해는 "하양"입니다. 빨강은 지는 해의 색상이고, 저녁노을에서는 노랑색으로 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양에 대한 정의도 없이 재팬이 해달라는 방식으로 한.일, 이것은 물론 한이 더 높기에 해와는 비교가 안되기에 재팬의 착각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태양은 북극성, 은하계의 중심태양을 의미하는 것으로 日 나 일입니다. 즉 나는 이 땅의 하나사람도 "나"이기에 1인칭을 말하고 국본과 같이 일본은 바로 東을 뜻합니다. 그러나 재팬이 말하는 해는 빨강 해로, 왜소성을 의미한다면 재팬이 맞는 말이고, 북극성이 아니고 해(Sun)을 의미한다면 日이라고 해야한다는 뜻입니다. 일본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해의 옳은 쪽으로 일의 동쪽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혀 의미가 다른 한문의 의미입니다. 국호논란전에 일과 일본의 의미해석이 전혀 다르기에 조정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2. 일제(일본제국, 1889년, 일본제국헌법)은 왜 한국이라는 명칭을 없애려고 하였나?

일본은 왜 국호 '한국'을 없애버렸나? [역사탐험] 대한민국 국호의 비밀을 찾아서

이 이야기는 한[韓]이라는 이야기로 고래로 조선을 국호로 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檀國 조선이고 桓國이라는 말이 삼국유사에도 나오는 말인데, 이를 단군조선이다고 합니다. 단군은 檀國의 天君으로 임금님을 줄여서 단군이라고 하지 국호는 檀입니다. 桓은 하늘의 광명(하늘로부터의 광명)이라는 뜻이고, 檀은 땅의 광명(땅으로부터의 광명)입니다. 환단은 바로 이를 아울러서 한[韓]으로 하늘로부터의 광명과 땅으로부터의 광명을 천왕으로 사람의 광명까지라는 천지인삼재의 광명으로 환국이든 단국이든 모두 한[韓]이라는 말이고 이는 중앙에서 서 중앙, 진한의 의미로 쓸일 때는 가한, 칸, 간으로 바로 임금님 칭호이면서 나라칭으로 쓰이던 우리를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桓韓檀은 모두 하나(하늘의 광명) 한[韓]이다. 이 뜻을 알고는 일제는 이를 없애려고 한 이유입니다. 대한(大韓)은 아무나 쓰는 말이 아니고 한의 제후들이 대칸으로 위대한 하나의 한이시여라는 의미로 대한은 바로 칸[큰한]으로 대웅(大雄)으로 환웅 천왕을 이름하는 배달의 대외적인 이름이 대한입니다. 그러나 칸을 의미하는 것은 한[한]입니다.

조선의 朝는 十日十月 한국말로 풀자면 "해를 품은 달"입니다. 즉 천군, 왕도 그냥 왕이 아니고 열개의 해와 열개의 달로 열은 최고, 하늘, 큰 大로 바로 온천하의 태양을 품은 달(땅 혹은 사람, 임금)을 의미하는 우리나라 조상이 만든 한문입니다. 특히 이 글자는 저 하늘의 북극성 십일십의 땅으로 제천-하늘에 제사-을 지내는 곳(땅)이라는 뜻으로 소도에 해당하는 가장 중심이 된다는 소도가 있는 곳으로 국호가 아니 수도, 제천을 하는 사람으로 천왕, 천군의 의미기 때문에 일본을 하나의 해로 그 본은 동쪽, 옳은 쪽에 있는 지명이름야.

3. “ 일본 국호의 유래 ”

日本이란 한자표기고,순우리말로 '해'고, 지나인들이 발음하면 '왜'가 되는 것이다.일본열도에 사는 사람들이 한반도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용어는 북방의 진번한 유민들과 부여세력이 이주하기 전부터 일본열도에 거주하며 살고 있었던 마한인들을 의미하며, 영산강지역을 日本의 중심으로 문화네트워크가 연결되었기 때문에 日本이란 사실 한반도 마조선인들을 의미한다.그리고 신라에게 멸망하여 이주한 가야인들과 백제인들이 한자로 고상하게 日本이라고 정했다고 봐야 한다.

요시다도고(吉田東伍)가 펴 낸 ‘대일본지명사서’(大日本地名辭書)의 (국호론(國號論))과 명치(明治) 33년 1월에 발간된 역사잡지(歷史雜誌)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 ‘日本’이라는 국호는 원래 한국인들이 일찍부터 써온 것인데, 우리나라가 그 이름이 아름답기 때문에 국호로 정했다. (伴信友)
  • <日本>이라는 문자(文字)는 상고(上古)로 부터 사용해온 (히노모도)라는 말에 한자를 충당해서 쓴 것이며 <日本>이라는 이름 그 자체는 삼한(三韓)사람들이 쓰기 시작한 것이다. (星野恒)
  • <日本>이라는 국호는 원래 한국인들이 쓰던 것이다. 그것이 우리나라 국호로 더욱 적당하기 때문에 만세불변(萬世不變)의 호칭이 됐다. (木村正辭)

이러한 것을 다 열거할 수 없고 참고하면 되고, 아무리 주장해도 왜를 왜라고 함은 일본이 왜가 아니기 때문이다.

4. 백제와 왜 :누가 먼저 사용한 것인가? 이 이야기는 당에서 유민생활을 하고 왜로 망명한 백제유민들이 백제대신 백제의 동쪽 일본땅을 일본이라고 했다고 하니, 그럼 과연 백제패망전에는 왜가 일본이라는 말을 국호로 썼는가? 백제부흥운동에 400척의 함선을 보냈다가 백강, 발해만 백강에 도착하기 전에 몰살을 당한 대참패는 신라해군에 의한 완벽한 승리로, 육상전만이 아닌 해상전에서도 대단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이야기입니다. 일제 조선사편찬회의 반도사관에서는 이 백강전투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었다는 이야기. 이후에 백제의 정권이 왜에 들어서나 완전 장악을 하지 못한 신교에 도교(당나라국교)를 수입하여 천황(신도교의 수장, 교황에 해당)이 그 신도교의 수장이라는 뜻이지 왜전체의 집권자 왕이라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단] ‘일본(日本)’이라는 국호, 백제와 왜(倭) 중 누가 먼저 사용했을까? 처음 사용 시는 ‘해 뜨는 동쪽의 나라’라는 방위 개념!

당나라 노새 노새 오합지졸 모여라. 당나라군대냐? 는 바로 7년간의 신라와 당나라와의 전투에서 신라가 100전 100승으로 당나라가 조의선인, 흉노군단의 흉내를 내서 병사들에게 까만 옷을 입혀내보냈으나, 그들은 화랑도 조의선인도 아니기에 군기도 없고 싸움에 대한 기본기가 없는 군대로 백전백패로 이 이후 당나라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 신라가 한 일로, 당나라를 직접 치지는 않았지만, 수십년에 걸친 통일전투에서 마지막으로 삼한의 땅을 당에게서 지켜내기 위한 노력으로 전력을 다했다. 당은 패망했고 신라는 기운이 없어, 발해와는 같은 동족으로 싸움을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 삼국사기

당의 문물을 가져간 것은 위대한 천자문의 나라 왜가 아니고, 왕인박사의 백제인들이 왜에 전한 것이다. 그래서 기원후 700년전후로 왜에 [일본]이란 말이 사용되었으나, 이는 지명 혹은 방향으로 해의 옳은 쪽, 본으로 동쪽을 가르키는 말로 사용되다 명치유신후 일본제국에서 명문화하여 쓴 것이 [일본]이다. 그러니 빨강과 해의 기본개념도 없이, 빨강은 피고 전쟁이다 식민제국주의의 표상으로 [빨강]해를 그린 것이다. 해는 평화고 생명인데 왜는 이를 歪曲하여 이 땅에서의 지존, 하늘의 명에 의한 빨강군대라는 의미이나, 이는 성경적으로나 개념적으로 적 그리스도로, 빨강해를 상징하는 것은 악마의 부대, 사탄이라는 의미다. 해를 상징했으면 빨강해가 없는 하양기, 백기를 썼어야 한다. 고로 일본은 해를 모르고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의 상징으로 히틀러의 하켄크로츠(갈고기 십자가)에 빨강 바탕을 칠한 것과 같은 제국주의 표상일 뿐 그것은 해가 아니다. 교육이 필요한 점. 자라나는 애들에게 이 히노마루 깃발은 해가 아니고 "원숭이 엉덩이"다를 알려주려고 [대한의 노래]가 나온 것이다.

5. 8세기 이후 백제도래후 백제대신 일본을 썼다.. 이것은 백제인들이 왜에 도착한 땅을 백제의 일본(동쪽)이라는 의미로 쓰인 것으로 백제인들은 이 뜻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아무리 간 큰 동이족이라도 동방예의지국의 후손이 자신이 태양 그 자체로 원 지하를 다스리겠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고로 일의 본은 東으로 태양의 본은 바로 百(濟)로 백제의 후손이 일본이라는 말로 썼으나, 국호로 책정된 것은 수백년, 1천년후의 일이다. 쓰여왔다와 국호다는 것은 재팬의 역사서에 공식화 되지 않은 국호를 우리가 사용해주어야 한다는 것은 사대주의가 아니고 패배주의적 식민사관이다.

일본의 역사

그 어디에도 일본을 국호로 사용했다는 것은 없다. 명치유신(1868년) 정식국호 반포 (1889년)으로 일본이 국호로 정해진 것은 공식헌법을 기준으로는 1889년이고 이때 국호는 [대일본제국]으로 [일제]라고 우리가 근현대사를 서술할 때 사용하는 용어이고, 명치유신까지 포함하더라도 1868년이 재팬이 인정하는 일본 국호다. 일본이 국호가 아니라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으면서, 조선왕조실록에도 분명 [임진왜란]으로 되어 있는 것을 부정하고 이를 [일본전쟁] [동북아 일본의 십자군전쟁]등으로 서구의 기독교 신자(그리사탄)의 전방부대 수만명이 들어와 조선의 양민의 코를 베어갔는데 그것은 일본, 일(동국)의 본으로 조선의 본은 일본이었다고 강요하는 신식민지 사관이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로, 정사에 나온대로 [임진왜란]이고, 자주적인 아의 역사를 쓴다면 을사늑약은 무효이기에 [경술왜란]으로 한국의 역사를 쓰는 자주적인 역사관이 필요한 시점이지 일본의 국호가 기원전 660년부터 사용된 천황 만세의 일가의 적통이 아니다. 역사는 무릇 나의 입장에서 반성할 점은 반성하고, 고쳐야 할 점을 찾아 다시는 그러한 치욕이 없도록 준비하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나라혼의 받침이 되는 민족혼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일개 뉴 라이트가 말한다고 신식민주의 역사관이 신문명 신문화의 주류라고 하는 것은 자가당착으로 신사대주의로 제국주의론이나, 우리나라가 제국화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 고로 신식민사관의 개념은 재팬의 극우파논리로 정한론이 우리의 역사기준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므로 주류 강단의 역사학자라면, 정확한 의미와 뜻을 전해, 필히 우리의 역사는 우리의 정신과 피로 적어야 함을 알려야 한다.

감사합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1일 (토) 03:16 (KST)답변

조선왕조 실록에 나온 일본 기사 저기요. 이거 원문 검색 결과입니다요. 번역 말고요. 번역은 5268건으로 따로 검색되요. 하 참... 이거 상대하는 내가 더 힘이 빠지네.--Xakyntos (토론) 2015년 4월 11일 (토) 07:52 (KST)답변

알았습니다.열심히 일본 하세요. 일본은 해의 본이니 빨강이지요. 빨강 해.. 나는 빨강을 해라고 하는 아이들이 일본이라고 한다고 해도 그게 어떻게 해냐고 한 것이고, 왜는 왜로 Japan [재팬]이라고 해야지, [니혼] [닛뽕]으로 써주면 안되지요. 제들은 [간고꾸]라고 왜어로 쓰지 않나요. 맛이 [간] 고꾸.. 한신[韓神]은 [가라가미]지요. 가라는 가야지요. 가는 하늘 가고 라는 땅이지요. 그럼 가라고꾸라고 읽어야지요? 안 그래요.. 아무리 떠들어도 [임진왜란]이 [임진전쟁]으로 승격될 수 없음은 코베인 저 기리사탄의 십자가 부대에 대한 검은 까마귀, 조의선인들이 나올 것임을 알리는 것이지요. 너무 아베가 설치니, 설치지 못하게 해야지요.. 아무리 원숭이 엉덩이가 불에 타서 샛빨개져도, 독섬, 뚝섬, 치우천왕 도깨비섬을 다케시마. 대죽? 하면 안되지요. 그건 역사를 호도하는 것이 아니고 세뇌시켜 식민지가 좋았다. 좋을 것이다고 하는 뉴라이트 신식민지사관이라고 합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1일 (토) 08:16 (KST)답변

잠깐만요. 위키백과의 정책과 지침은 알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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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위키백과는 많은 사용자들의 자발적 참여로 풍성해지는 시스템이긴 합니다만 필연적으로 그에 따른 정책과 지침들이 있습니다. 뭐... 전부 정독하기에는 시간도 없고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으니 차차 보시고 일단은 백:독자 연구 금지, 백:신뢰할 수 있는 출처, 백:확인 가능, 백:중립, 백:비주류 이론, 백:인신 공격의 6가지부터 숙지해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귀하의 열의는 매우 고무적입니다만, 이상의 정책과 지침을 준수하지 않으신다면 그 기여가 모두 되돌려질 수밖에 없으며 너 나아가 차단조치 될 수 있습니다. 하시는 일이 잘되시기를 바라며 또한 감사합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4월 11일 (토) 21:40 (KST)답변

일본의 국호는 일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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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대로 국명을 바꾸지마세요.--Iroiromo (토론) 2015년 4월 12일 (일) 14:34 (KST) 지금현재 국호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일본서기]의 위서와 정서냐에 대한 토론입니다. 즉 기원전 660년, 혹은 기원후 2세기 고분문화부터 일본이라는 국호가 있었다고 한 것에 대해 아니다는 것을 설명한 것입니다. 왜[Japan]으로 임진왜란이지, 임진일란, 임진전쟁 등은 당시의 국호를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2일 (일) 15:23 (KST)답변

단순히 그것만 가지고 얘기한다면 동의합니다. 그런데 토론중인 주제가 그것뿐인가요?-Iroiromo (토론) 2015년 4월 12일 (일) 16:16 (KST)답변

본 일본은 백제라는 의미로, [재팬]은 영어로 다른 나라도 다 [재팬] 영어발음으로 합니다. 굳이 태양이라고 해줄 이유기 있는가입니다. 일제때야 [아까이 히노마루]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했다고 하지만, 실제 해의 색은 하양이기에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히노마루의 원 뜻은 해의 흑점으로 까맣게 그려야하고요. 태양의 본 색은 하양[白]으로 백제의 동쪽이라는 뜻이기에 [일본서기]가 정사라는 이야기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욱일승천기라고 하지만, 전혀 해가 아닌 빨간 깃발로 전쟁깃발로 일일이 빨간 해는 일본이 아니다고 해 줄 이유도 없지 않으까 합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2일 (일) 18:22 (KST)답변

일본의 국기를 가지고 그렇게 얘기하시는 것은 조금 억지라고생각합니다. 그런 식이라면 팔라우의 노란 원은 달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달은 본래 노랑색이 아닙니다. 중국의 오성홍기 역시 노란 별이 그려져 있으나 별은 원래 노랑색이 아니죠. 미국의 성조기도 하얀 별이있으며 마찬가지로 별은 하얀색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태극기는 어떤가요? 음과 양을 상징하는 태극무늬가 그려져 있는 데 음과 양을 과연 빨간색과 파란색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억지입니다. 단지 그것들은 상징일 뿐입니다.-Iroiromo (토론) 2015년 4월 12일 (일) 22:28 (KST)답변

그건 그렇지 않다고 한 것은 국기에 빨강을 썼다고 나쁠 것은 없습니다. 의미가 빨강을 그리고 그것은 힘이다하면 되는데, 하도 일제시대때 [아까이 히노마루]라고 하니, 어느 어른이 아이들에게 아느냐고? 해는 빨강이라고 하고 떠들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아니다고 하니까 아까이 히노마루.. 충성해.. 해에게.. 하니 그것은 해가 아니다고 아이가 울고 나갑니다. 그건 해가 아니에요.. 그게 맞아요. 청일전쟁때, 청나라의 청천백일기는 오행색이에요. 그런데 일제가 그랬답니다.해를 하양으로 그렀다. 그래서 아까이히노마루가 이겼다는 해는 빨강이다. 그건 아니다는 것이지요. 청천백일은 청제인 창공과 하양 해로 삼화오제의 오제 오방색이지 국가의 표상이지, 전쟁의 이기고 지는 것인 빨강 해다, 그건 아니다에요.해는 하양이 맞아요. 각국가 민족마다, 전통색이 다르고 그것을 쓰는 것은 자유입니다.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아까이 히노마루] 빨강해가 일장기고 해다. 그러니, 해는 바로 니혼이다. 그리고는 동해에다가는 [Sea of Sun]이 아니고 영문으로는 [Sea of Japan]이라고 했지요. 그래서 재팬이라고 읽자고. 아니 그렇게 하면 니혼 정부에게 직접 [Sea of Nippon]으로 하자고 하세요. 왜 한국에서 [니혼],[닛폰]이 어떻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요. 아니 내가 지금 틀린 말 한 것이 아니잖아요? 해는 하양이다, 그러니 해를 빨강으로 하는 것은 재팬밖에 없다. 그러니 그 말은 믿으면 안되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재패니즈다. 그것을 이야기하는데, 무슨 국기를 어떻네. 않네. 음양은 반극이에요.반대되는 색으로 하양과 검점, 그리고 빨강과 파랑이 맞아요. 그런데 재팬때문에 꺼꾸로 그려놨죠. 아세요? 해가 빨강이라고 하니까 위에다 그리고, 아래를 파랑으로 했지요. 박영효가 그랬어요. 재팬 아까이 히노마루 때문에, 원래는 음양할 때 하늘이 파랑이고 땅이 빨강이에요. 그걸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맞아요, 반으로 중앙으로 반극을 그려야 하는데, 멍청하게 해가 빵강이니 위에 있고 그 아래 하늘이 있다고 그려놔서 우리는 아직 빨간해를 넘지 못했나봐요. 그래서 색깔도 원 우리의 정신으로 바꾸어 나가자 하고 공부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이야기에요. 아이들은 어릴 때 잘못 알면 평생을 [아까이 히노마루]로 빨강이 해인 줄 알고 살아요. 그게 식민지교육의 악영향이지요. 이제는 고쳐야 하지 않겠나요? 안 그래요. 아무리 무작정 니혼이 좋아도, 진리, 상식은 지켜야지요.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09:30 (KST)답변


[재팬]의 국호는 재패니즈로 [日本]입니다. 우리는 한문으로 쓰지 않기에 [일본]이라고 정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일부 언론사나 기사는 왜가 아니고 일본이라고 씁니다. 구분이 필요하기에,임진왜란때 쳐들어온 기리시단 등은 일본이 아니고 [왜]라고 해야합니다. [일제]가 1889년-1945년까지고 그 이후가 [일본]이라는 구분은 해야합니다. 마치 기원전 660년에 일본이 현재까지 천황가로 지속되었다 천세일가로 장손국가다는 것을 믿으라고 믿는 것은 안된다입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2일 (일) 18:22 (KST)답변

그리고 일본을 자꾸 재팬이라고 부르시는데, 재팬은 영어입니다. 국가를 부르는 명칭에 대해서는 미국,영국,그 국가에서 부르는 발음대로 부르는 것이 명칭입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한자로 日本이며 이걸 한국식 발음으로 일본이라고 부를 뿐입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에도 일본의 국호는 '일본'이었습니다. 8세기경 나라시대 때부터 일본 이라는 명칭을 사용해왔습니다. 그러니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또한 조선에서 왜라고 부른 것이지 일본 자국내에서 왜라고 부른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본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Iroiromo (토론) 2015년 4월 12일 (일) 22:41 (KST)답변

그 국가에서 부르는 발음대로 부르는 것이 명칭입니다 : 네 잘 알겠습니다. 그 나라에서 발음하는대로 표기하고 있습니다만, 잘 모르겠다고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니혼/닛폰] 혹은 [니혼코쿠/닛폰코쿠]라고 해야한다고 하는데, 니혼과 닛폰 혹은 닛뽕인지 정부가 정할 문제이라서 한번 물어 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 말한다고 다 들어주나요? 우리는 우리자국의 땅으로 [독도]라고 하는데 이를 굳이 [다케시마]라고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쓰시마]도 [대마도]가 한문이름인데, [마산]은 어디가고 [쓰]만 있는지요? 닛뽕에서는 영어발음 표기는 안하나보죠. 우리는 영어로도 유나이티드 어메리카, 혹은 [유에스에이]라고 적어도 다 알아듣고 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아는데,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줄여서 중국하는데, 일본국[발음: 닛뽕고꾸]을 해도 아닌데 일국으로 해라? 왜요. 일본과 일은 다르다고 했지요. 동과 해가 같다는 것은 이해가 안됩니다. 그리고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 또한 [조선]에서 왜라고 부른 것이지 [왜]에서 일본이라고 불렀다고 역사의 기록을 바꿔라 마라할 권한이 있으세요? 부른 적이 없건 있건간에 베어간 코들은 어떻게 할 거에요? 그걸 이야기해야지 무슨 [임진왜란]으로 왜놈 이야기를 왜놈 이야기했다고, 침략전쟁을 한 톨의 양심도 없이 왜에서는 일본이라고 했다. 그러니 그렇게 불러라. 왜 그래야 하는지를 이유를 이야기해야지요? 토요토미 히데요시 기리사탄이 닛뽕[일본]이라고 건방지게 한 편지요. 그거 웃기지 말라고 했다가 침략한 거 아니에요? 왜 정명가도면 배타고 가지 맨날 조선에 대한민국에 침을 질질 흘려요? 독도가 왜 닛뽕 땅이니?--Canend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01:46 (KST)답변

정확하게 알려주면 (영어로), 고려하도록 하지요. 개인적으로는 [니혼]이 나은데 [닛폰? 닛뽕]으로 하라고 하니까, [닛뽕 Nippon]으로 하라는 이야기네요. 안배는 [아베]라고 하고 있고 동경도 [도쿄]라고 기사에는 다 적는데 관습적으로 닛뽕을 일본으로 말하고 적고 있습니다. [닛뽕]으로 써라고 하니... 발음이 이랬다 저랬다.. [니혼]고라고 하니 [니혼]이 발음하기는 좋은데.. 이건 내가 말할 사항이 아닌데.. 대한민국 정부에서 정할 문제고 국가 발음 통일안을 정해야, 우리식 표기는 [일본]이고 발음나는대로 적으면 [니혼], [닛폰]이고 영어국명은 [Japan]이니 이를 [재팬]이라고 하는 것은 안 좋다? 그럼 [저팬] 아니면 Zippangu 외국에서는 지팡구 레스토랑, 지팡구가 뭐에요 물어보니, 그거 예전 20세기에 닛폰에서 불렀던 자국명칭이라고 하던데.. 내가 알아야 할 사항은 아니니, 앞으로는 [닛폰, 닛뽕]으로 말하겠습니다. 되었지요. 그리고 닛뽕 사회과부도에는 현계탄(玄界灘)이 대마도와 닛뽕열도사이라고 나와 있는데, 일제시대때 한국 지리과부도에 대마도와 한반도라고 했지요. 대마도가 마치 닛뽕 땅처럼, 우리나라 지리과부도는 고쳐야 하는데.. 언제 돌려줄지 대마도를 그거는 알려주셔요. 독도의 원 한문은 [毒島]로 독섬, 뚝섬으로 도깨비섬이에요. 다케가 시마라는 곳은 없어요. 그리고 류구국은 독립시켜주셔야죠.. 그 아이들이 얼마나 상심이 크겠어요? 안그래요..해방된 지 70년이 지났는데..--Canend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02:08 (KST)답변

재팬 -니혼, 닛폰으로 해달라?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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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가 없네요. 그냥 평생 재팬이라고 부르세요. 물론 혼자 그렇게 불러야겠죠? 여기서 반달하지 마시고. -Iroirom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02:09 (KST)답변

[재팬]이라고요. 네.. 재팬이 좋지요.. 그래도 조선인민공화국에서 재팬을 왜라고 재팬 킹을 왜[倭]나라, 왜왕[倭王]이라고 하는데, 그게 좀 더 민망하네요.. 그래도 영어로 [재팬]하면 더 좋지요. 외국인과 만나서 이야기할 때도 [닛뽕]보다는 [재팬]하면 다 알아들으니까요. 세계공용국가명칭이라.. [재팬] ? 발음이 나쁜가.. [저팬]으로 하는건가>> 내 발음문제니 [재팬]으로 하겠습니다. 아리가 또우....--Canend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02:21 (KST)답변

일본의 자국발음대로 표기하라는 의견 정리. 원 발음은 [니혼, Nihon]이고, 니혼정부의 입장은 [닛폰,닛뽕 Nippon]으로 전세계에 자국발음으로 표기해달라고 했으나, 별 반응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니혼/닛폰]으로 정리하고 [니혼코쿠/닛폰코쿠]라고 통일하려고 했으나 정부의 결정은 없다.

일본 – 일본국 

일본어: 日本 – 日本国 니혼/닛폰 - 니혼코쿠/닛폰코쿠[34]

니혼의 영어국가명칭을 공식적으로 [Japan]으로 영어발음, 세계화를 위해 영어국명을 발음나는대로 하는 것이 현 국가명칭 표기법으로 정한 바, [저팬] 혹은 [재팬]으로 불리우나, 활음조법칙에 따라 같은 모음으로 발음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임. [재팬]

교육의 문제, 현 일본의 뜻은 동(東)쪽, 혹은 동쪽땅이라는 의미로 원래 사용한 사람들은 중국대륙에 있던 백제에서 불렀던 지명이름으로 추정됨. 즉 백제의 일본으로 백제속 지방명칭이나 그 명칭자체의 의미가 좋아 국호로 1889년 정식 국호로 [대일본제국]으로 정하고 현재는 [일본국]이라고 하고 있음. 일본의 다른 뜻은 해의 본이라는 뜻으로 해의 본체는 하양으로 백(白)으로 百濟의 일백의 하나로 백제를 지칭하는 말로, 하양임. 그런데, 일장기에서는 빨강의 원을 표시하여 태양이 아닌 다른 의미로 사용중. 치우천왕의 빨간 도깨비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듯함. 日의 丸, 일명 일장기의 명칭으로 이는 태양의 흑점이라는 원말로, 이 태양의 흑점은 말 그대로 흑(黑)으로 검정색이어야 하나, 마루를 桓으로 생각하여 쓴 듯하지만, 확실한 내용이 없슴. 맞지 않는 뜻으로 대동아전쟁중 총탄, 가미(신)가 되자는 의미로 쓴 것으로 현재는 [히노마루]라고 부르지만 [日章旗]로 법제화함. 교육상 해의 본(해의 색)은 하양으로 우리나라 경우, 해를 빨강이라고 하는 것은 감정적인 시각적 작품에서 사용하나, 과학시간에서는 진리가 아니므로 주의가 요망됨. 과거 '대한의 노래' 일명 '원숭이 엉덩이'에 후렴부를 넣어 그 뜻을 알려야 할 것으로 보임. 해를 빨강이라함은 해가 떠오르는 모양이 아니고 해가 익어 지는 모습으로 노을이 지면 노랗게 변하는 해가 중천에서 반정도 기울어졋을 때의 색이 '빨간 해'임. 교육상 주의가 필요함.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02:47 (KST)답변

참 국기 가지고 교육상 주의가 필요하다고 하는 분은 처음이네요. 그럼 부탄 국기는 존재하지도 않는 용이 그려져 있으니 주의가 필요한가요?-Iroirom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08:29 (KST)답변

빨강이 해라는 것은 없다입니다. 해가 빨강이라고하는 국기는 [재팬]밖에 없어요. 그리고 나치기하고. 다른 터기 등의 국기는 땅의 신을 상징하기에 문제가 없어요. 그러나 [히노마루]는 해의 흑점이면 흑(검정)이고 해라고 표상을 하면 빛으로 하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진리요 과학입니다. 의미를 아무리 자기 마음대로 가져다 붙인다고 되는 것이 진리는 아니라는 말씀. 애들이 보고 [아까이 히노마루]하는 것을 제국주의 전쟁찬양을 위한 놀이이니 주의를 해야한다는 것. 동양의 기본철학을 모르면 그것이 [재팬]이다는 뜻이 됩니다. 빨강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가 아니고 해라고 하면서 [빨강]을 그렸으니 그것이 문제다. 즉 해는 빨강이 아니다 죽임과 전쟁, 피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는 그러한 죽음, 피, 전쟁의 빨강을 해로 표상하는 국기는 없다. 다른 말로 힘의 상징이다고 하면 모르지만 [니혼]이 [아까이]하면 서로 맞지 않는 말이므로 이제는 속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셨습니까? 태극의 이론은 조화고 평화지, 무슨 독도는 [재팬]땅하는 것이 아까이 히노마루로 해가 빨강이 아닌데, 빨강이야. 알았어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기 상징이나, 디자인, 색체학은 전문기관에 알아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과학선생한테 해(빛)의 색은 무엇입니까? 물어보고 [빨강]이다고 하면 그 이유를 가지고 와서 질문하세요. 힘듭니다. 무슨 색체학 선생도 아니고, 해가 빨강이 아니고 [하양]이라고 하는데도 무슨 말이 그리도 많은지.. 白 해의 본(日本)은 하양(White)다. 이는 과학이고 진리입니다.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09:06 (KST)답변

우리 하나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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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하나 태극기를 빨강 파랑으로 음양을 표시한 것이 잘못이 아닌가. 잘못 된 것일 수도 있으나, 이는 태극의 이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좌선이고 일월은 우선이며 지구는 좌선이다.

태극의 원 뜻은 천일(하늘의 뜻)은 하나고 물의 도이며 파랑이다. 지일(땅의 뜻)은 둘이고 불의 도이며 빨강이다. 인일(사람의 뜻)은 셋이고 목의 도이며, 노랑이다.

이게 삼극 즉 이 모든 것이 하나로 태극이다. 무한창조다.

이것은 한번에 나오는 것이 아니고 파랑-빨강-노랑의 순서대로 나와 안정을 취하고 다음 태극이 나오는 우주의 이치인 순환을 의미하고 하늘의 뜻에 따라 사람이 하늘과 땅의 도에 합치한다는 인중천지 일, 즉 사람은 천지중에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는 무극이고 둘은 반극(음양극)이고 셋은 태극(삼극)이다.

자 단순하게 정지된 상태에서는 태극기는 잘못이다고 볼 수 있지만, 현재 진행중이다. 즉 현재 하늘이 나오고 땅이 나와 위로 덮었다고 보면, 다음에 노랑이 나오는 진짜 태극을 이룬다. 이것은 아마도 통일기가 될 수 있는 우리나라 통일의 염원이 담겨있다고 보면 됩니다. 하나둘셋, 지금은 하나둘, 하늘땅. 그리고 사람이 합일 통일하자는 태극의 원리로 인류평화와 사랑의 하나가 되자.

그것이 홍익인간이므로 현재는 하늘이 나오고 땅이 나오고 아직 통일이 아니되었기에 하늘땅이 있고, 사람이 태극이 나와야 우리 하나 태극, 무한창조기가 그려진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독도기로, 뚝섬의 좌독기, 좌선기는 치우천왕의 표상입니다. 잘못 알고 있는 독섬,독도의 한자 獨島는 뜻이 무릉도이고 이는 바로 도깨비섬으로 독섬이라는 뜻입니다. 이유는 병풍으로 울릉도가 무릉을 감싸앉은 형태의 우리나라 동해의 해, 태양신의 성지로 천독(신불)의 섬으로 바로 독도(毒島) -조선천독의 그 독으로 독하다가 아니고 主母로 이 땅의 신, 치우천왕의 독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도깨비 천왕의 지킴섬입니다. 아무리 다케가 어떻다고 해도, 다케는 다케지 시마는 없다는 것을 태극이 보장하는 진정한 하나의 표상 독섬이 동해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게 하나요, 태극이고 독도의 의지입니다. 아무 뜻도 없이 해는 빨강이다. 그러니, 빨강앞에 이길 자 있느냐, 내놔! 그것은 빨강해의 의지로 절대로 고분고분 내 주어야 할 우리 영토, 우리의 정신, 우리의 역사임을 알자는 뜻입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09:51 (KST)답변

달은 노란색이 아닌데 노란색으로 그려놓은 팔라우의 국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프랑스의 국기는요? 파란색 하얀색 빨간색이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한다는 근거가 있나요? 국기는 그냥 상징일 뿐이에요.-Iroirom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13:48 (KST)답변

당연한 걸 자꾸 물어요 왜? 국기는 그냥 상징이에요. 맞아요. 근데 왜 강요하냐고요. 왜? 해가 빨강이면 [닛뽕]으로 하든지 말든지, 그러나 [아까이 히노마루]가 어떻네 저떻네 자랑하지 말아요. 지겨워요. 지발. 뭔 좋은 상징도 아닌 빨강으로 욱일승천기(Sun-Rising Flag)라고 내걸고, 731에 욱일승천기 달면 그게 욱일이냐고요. 강일이지.. 그걸 강요하고 보라고 유튜브나 그런데 올리고 홍보하니까 아니라고 한 것이지.. 속지말라고. 어떻게 해냐고.. 닛뽕 해만 빨강이라고, 왜 강요하냐고요. 애들이 보면 해는 빵강.. 아니 80먹은 노인네들이 해는 빨강으로 알고, 왜 해가 빨강이에요? 하니 어린 시절 [아까이 히노마루]해서 매일 외워서 그렇다고 하잖아요. 반복 세뇌 안시켜도 아니까 그만 해요. 지발. 어떻게 [다케시마]가 닛뽕꺼냐고요. 닛뽕이 왜 서쪽에 있냐고요. 알아들어요? 닛뽕의 닛뽕은 진주만이지, 왜 자꾸 서쪽이 닛뽕이라고 하냐고요. 핵심을 이야기하지 않고 전 세계 깃빨 연구하라고 하니. 참.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13:58 (KST)답변

색상은 각 민족 지역에 따라 달리 생각해요. 그래서 파랑하더라도 다르고요. 검정은 서양에서는 죽음의 색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태양족이기에 태양에서 오니 까만 까마귀, 즉 태양에 타서 까망으로 온다. 북수는 흑이지만 바로 고마와 같이 신의 색이라고 해요. 즉 죽음은 새로운 삶의 씨앗이라는 뜻이고요, 그래서 그 색을 괘에다가 넣은 것이고요. 그런데,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의미로 빨간색을 넣었다. 얼마나 좋아요. 적십자에 현혈은 전쟁, 불, 화재 그러한 상징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닛뽕기는 아예 대놓고 해는 빵강이다고 하니, 닛뽕애들에게 해를 그리라면 아주 쌧빨깐 해를 그려요.. 그럼 인성도 안좋고요, 또 과학적인 진리와는 정반대되는 색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에요. 그게 좋은 뜻으로 열정이라고 하면 해는 아니잖아요. 그럼 괜찮은데, 의미를 주어, 대동아를 닛뽕으로 뻣어나가자하면 이야기는 영 다른 이야기에요. 아셨어요? 의미를 무엇에 두었느냐?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인가? 그것이 중요하다고요. 백제 왕인박사가 아무리 천자문을 제대로 가르쳐도 천지현황했는데 천지청적.. 하면 무엇을 아는거에요. 안그래요.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14:09 (KST)답변

예 다 알겠지만 님의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위키백과 수정하지 마시고 블로그에나 올려보세요.-Iroiromo (토론) 2015년 4월 13일 (월) 14:24 (KST)답변

토론 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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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고조선 등에 아주 긴 글을 남기셨더군요. 솔직히 너무 길어서 내용을 다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앞으로 토론 페이지에는 쟁점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서, 간략하게 자기 주장만 쓰는 것이 어떨까요? 위키백과의 토론 페이지는 특정한 신념이나 신앙 또는 역사관을 홍보하기 위한 공간은 아닙니다. 실제 문서 편집 과정에서 쟁점이 생긴 경우에 토론 페이지에 간략히 자신의 주장을 적는 것이 좋겠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5년 4월 12일 (일) 16:21 (KST)답변

네 잘 알겠습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2일 (일) 17:20 (KST)답변

위키백과를 자신의 독자연구를 발표하는 공간으로 삼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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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독자 연구 금지, 백:오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독자연구가 아니라 전문가 ― 이 경우는 관련 학과 교수 ― 들의 자료를 출처로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4월 15일 (수) 06:25 (KST) 네. 잘 알겠습니다. 독자연구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출처를 올려도 모두 재야사학이다, 환빠다하니 올려도 인정이 안되어 그렇게 했습니다. 반드시ㅣ 출처를 제시하도록 주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5일 (수) 11:09 (KST)답변

.............. 역사계열 같은 경우의 출처는 보통 1차 사료나 ‘관련학과 교수의 연구’로 합니다. 인터넷 신문의 칼럼이나 위키백과 문서, 사적인 홈페이지는 백: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아닙니다. 1차 사료조차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이를 가공해서 주장했을 시 역시 독자연구라고 합니다. 님께서 제시하셨었고, 또 지금 제시하신 것들은 모두;; 신뢰할 수 있는 출처들이 아닙니다. 이 경우를 백:독자연구라고 합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4월 15일 (수) 12:55 (KST)답변

네, 예를 들어 설명한다는 것이 그만..삭제했습니다.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5일 (수) 21:09 (KST)답변

귀하의 개인적인 연구를 토론페이지에 발표하지 마세요. 몇 번 말씀드립니까? 백:오해백:토론지침 숙지하시기를 바랍니다. 토론 문서는 게시판이나 발표장이 아닙니다. 특정 주제에 관한 개인 견해를 발표하는 용도로 토론 문서를 이용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토론 페이지 역시 위키백과의 일부입니다. 제가 드리는 마지막 주의일 것 같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4월 16일 (목) 13:34 (KST)답변

위키백과는 개인의 의견이나 생각을 발표하는 곳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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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에 일방적인 주장을 올리시는 것을 중단해 주세요. 위키백과는 개인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곳이 아니고, 자신의 주장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광고하는 곳이 아닙니다. 위키백과의 토론 문서와 사랑방은 위키백과를 편집하기 위한 토론 공간입니다. '위키백과:위키백과에_대한_오해#위키백과는 개인의 의견이나 생각을 발표하는 곳이 아닙니다.'와 그 밑의 '광고하는 곳이 아닙니다' 문단을 숙독해 주시기 바랍니다. 중지하지 않으시면 편집 중단을 강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케골 2015년 4월 15일 (수) 09:14 (KST)답변

네 중단하겠습니다. 사랑방이 있는 줄도 모른 사람인데, 이곳저곳에 계속 문제를 던져서 그에 대한 답변으로 올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랑방에 개인의견은 올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부르지 않았으면 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Canendo (토론) 2015년 4월 15일 (수) 11:11 (KST)답변
부른 적 없습니다. 귀하가 독자연구로 토론 문서를 너무 만들어대니까 다른 사용자에게 의견을 구한 겁니다.--Xakyntos (토론) 2015년 4월 15일 (수) 12:47 (KST)답변

네 귀하는 귀하일 하세요. 송호정 교수 "단군은 만들어진 신화"날조다!!!! 네 알았습니다.이 내용이 뭔지 애들에게 분석하라고 시켰으니까 다른 일 없을 겁니다.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5일 (수) 13:51 (KST)답변

기자조선의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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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조선은 삭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자 조선'이 나타나는 사서史書는 차이나의 '상서대전尙書大典'에만 서술되어 있는데, 이 책은 차이나 민족이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민족이라는 인식을 대표하는 글입니다. 다시 말해, 기자가 조선으로 갔다는 기록은 이 기록 이외에 어느 곳에서도 나타나지 않으며, 현 한일 사학계에서는 '기자동래설은 허구'라고 결론 지은 상태입니다(고구려연구재단/조법종 논문). 이런 상태에서 우리 스스로 중국 측이 동북공정의 한 근거로 삼고 있는 '기자동래설'을 마치 사실인 양 서술하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사람살이(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1. 이곳은 한국 위키백과가 아니라 "한국어"위키백과입니다. "우리 스스로"라는 표현은 맞지 않습니다. 이곳은 한국인이 다수가 되어 운영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운 외국인들도 얼마든지 참여하고 있습니다. 2. 기자조선의 존재는 이미 여러 현대의 사서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상태에서 아예 빼버리는 건 적절하지 않습니다. 위키백과:위키백과에 대한 오해를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위키백과는 사적인 연구성과를 발표하는 곳이 아닙니다." Caffelice 2006년 12월 23일 (토) 01:01 (KST)답변
1. 아 '우리 스스로'라는 부분과 서명을 달지 않은 부분은 앞으로 정정하겠습니다. 2.'기자동래설은 허구'라는 연구결과를 단지 '사적 연구성과'라고 폄하하시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미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계에서 인정한 내용입니다. 언급하신 '여러 현대의 사서'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살이 2006년 12월 23일 (토) 02:02 (KST)답변

기자동래설을 인정하는 학파가 존재함은 사실입니다. 그것이 중국이든 한국이든. 그런 의미에서 기자조선을 완전히 위키백과에서 제거하는 것은 중립적 시각에 어긋납니다. 이 문서에는 "기자조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정도의 코멘트가 붙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이미 기자조선의 진위 논란에 대한 양쪽의 주장이 기자조선에 실려 있습니다. Caffelice 2006년 12월 23일 (토) 02:21 (KST)답변

규원사화 인용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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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원사화에서 남국이 중국에 진출했다는 내용과, 기자조선은 대체 무슨 관계입니까 ... 그 내용은 차라리 '열국시대'라는 항목을 만들어 따로 기술되어야 할 내용입니다. 그리고, 규원사화의 내용을 긍정하더라도, 중국의 동이족은 후에 서국에 의해 관리되었고, 서국도 춘추시대 중반에 주나라에 멸망했습니다. 규원사화의 내용을 신뢰한다면, 북애자가 남긴 '만설'에 기자조선의 기록이 남아있으므로, 이러한 주장은 불가합니다. jtm71 2006년 12월 31일 (일) 14:06 (KST)답변

전조선, 후조선 명칭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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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조선, 후조선은 기자를 칭하기 위해 임금과 신하가 의논하여 정한 것입니다. 김종서와 정인지는 그에 따랐을 뿐입니다.jtm71 2006년 12월 31일 (월) 18:28 (KST)답변

제왕운기의 원문을 확인한 바 없으니 엠파스한국학백과사전에 근거하여 제왕운기에 전조선과 후조선으로 나눈다고 나오는군요.[1]

이의가 있으면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따져야 한다는 이야기이네요. 어쨌거나, 이승휴가 그렇게 분류했다고 해서 그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의견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jtm71 2007년 1월 1일 (화) 22:32 (KST)답변

공식적으로 그렇게 불렀는지는 모르죠.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서 세종대왕과의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후조선이라고 부르는것을 보면 오래전부터 후조선이라고 불렀을것이라고는 짐작이 됩니다. --Breathejustice 2007년 1월 3일 (목) 18:33 (KST)답변

직접 확인해 보세요. '전조선'이라는 내용은 없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라는 것은 개인적인 견해일 뿐입니다. jtm71 2007년 1월 3일 (목) 21:29 (KST)답변

북애노인의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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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가 아닌 이상 북애노인의 생각을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정확한 근거가 없는 이상 추측성 내용은 자제합시다. jtm71 2007년 1월 3일 (목) 21:19 (KST)답변

근거가 제시되지 않는 내용 관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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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가 제시되지 않는 내용들이 몇 가지 있는데, 당분간 지켜보다가 삭제하겠습니다. jtm71 2007년 4월 17일 (화) 11:48 (KST)답변

저작권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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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 내용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인데,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의 저작권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인용에 문제가 없습니까 ... jtm71 2007년 7월 20일 (금) 21:01 (KST)답변

그리고, 중요성에 비해 자료가 너무 길어서 굳이 인용해야 한다면 위키인용집이나 위키자료집을 이용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jtm71 2007년 7월 20일 (금) 21:08 (KST)답변

저작권에 대한 소명이 없어 해당 내용을 삭제했습니다. jtm71 2007년 7월 25일 (수) 05:14 (KST)답변

'쥬신'이라는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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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신'이라는 표현은 대쥬신제국사라는 소설에서 처음 나온 말이기에 삭제합니다.

황윤석의 주장에 대한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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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는 현재의 주석 3번째입니다.

[2]을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뭉게구름 2007년 12월 18일 (화) 08:09 (KST)답변

주석 3번째를 참고문헌 1번째 항목으로 이동했습니다. 해당 항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뭉게구름 2007년 12월 18일 (화) 08:16 (KST)답변

참고문헌으로 뭉뚱그려 표시하면, 개별 문장에 대한 출처가 궁금할 때 찾기가 힘들어집니다. 어떤 내용을 참고해서 글을 썼다면 해당 문장 바로 옆에 ref로 출처를 밝히는 편이 낫습니다. :) --정안영민 2007년 12월 18일 (화) 08:20 (KST)답변


[3]에서는 ref를 붙일 수 있었습니다.
이후 편집이 되면서 분할되고 다른 내용들이 추가되었으니 ref로 명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황윤석의 주장 부분은 삭제하셔도 이의 없습니다. --뭉게구름 2007년 12월 18일 (화) 08:44 (KST)답변

출처 없는 문장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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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가 달린 채로 오랬동안 방치된 출처가 없는 아래 문장

  • 기타 자료《태원선우씨세보》에서는 기자조선의 36세 가덕왕 이전의 왕은 실제로 왕이 아니었으며 가덕왕의 조상을 왕으로 지칭한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를 삭제합니다. 위 문장에 출처를 제시하면 언제든지 저 문장을 다시 추가할 수 있습니다. -- 66 Quotation Marks. 99 2008년 2월 10일 (일) 13:53 (KST)답변

출처가 제시되지 않은 다음의 문장들을 토론란으로 옮깁니다. jtm71 (토론) 2008년 6월 28일 (토) 11:05 (KST)답변

'*조선이 순수한 음차라면, 당시 중국사람들은 "뎨욱디엔" (한자상고음, *dieugdien) 또는 "닥단" 비슷한 소리를 적었던 것으로 볼 수 있고, 이 소리값이 조선(중세, 됴션) 또는 숙신이 된 것으로, "달단" 또는 "타타르"의 소리값과도 이론상 관련지을 수 있다. 肅愼 또는 朝鮮 등의 명칭은 춘추나 산해경 또는 사기에 나오지만, 女眞의 중고한자음에서 나온 珠申이라는 명칭은 滿洲源流考 등의 후대문헌에서야 찾아볼 수 있다.[출처 필요]'
'*조선의 朝와 "아사달"의 아사가 훈차로 설정되면, 조선은 당시의 중국인들이 아침녘의 땅/사람 등등을 가리킨 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조선은 중국인들이 당시의 동이족의 나라중 한 세력(아사달)을 가리킨 것이 될 수도 있다. [출처 필요]'
이때 1048년은 《제왕운기》의 1028년이 오류임을 밝힌다는 의견이 있다.[출처 필요]

글로벌 세계대백과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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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대백과 틀이 삭제된 적이 있어서 글 남깁니다.

참고하여 {{글로벌세계대백과}} 틀이 삭제되지 않게 해 주세요. --Knight2000 (토론) 2008년 11월 22일 (토) 20:07 (KST)답변

211.48.25.169의 편집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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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을 알 수 없는 기이한 편집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편집이 필요한 이유도 알 수 없고 편집된 후의 모양도 기이하여 편집을 모두 취소하였습니다. 혹시 편집의 이유와, 필요성을 말씀해 주신다면 다른 방향으로 편집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3월 16일 (화) 20:37 (KST)답변

사용자:Dkssuddksgody의 편집 되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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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편집은 명확한 근거가 없이 주요 내용을 삭제한 것으로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현재 한국사학계의 일반적인 의견과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등, 중립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되돌렸습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3월 17일 (수) 16:08 (KST)답변

진개 인용문 삭제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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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akyntos님 안녕하세요. 편집을 한다는게 그만 실수로 본문을 직접 편집해 버렸네요. 위키피디아 원칙을 잘 이해 못해서 죄송합니다. 우선 진개와 관련해선 사마천 사기 흉노열전에 연나라 명장 진개 가 동호의 땅을 2000리 빼앗앗다라는 기록이 있는데요. 실제 전국시대 연, 조, 제 나라의 역사서에는 진개의 동호[고조선]에 대한 전투기록이 단 한건도 기록되어 있질 않습니다. 김종서 저서 [단군조선영토연구] 를 인용했습니다. 해당 책에도 진개와 관련된 내용이 왜곡되어 기록된것임을 중국의 역사서를 통해 증명하고 있습니다. 꼭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물찾기 2010년 12월 16일 (목) 17:04 (KST)

다른 사서에 안나왔다고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있을지요^^.. 위키백과의 원칙상 흉노열전에 이러이러하다~ 라고만 쓰면 되지 왜곡이라고 생각한다라는식으로 쓰시면 독자연구가 됩니다. 위키백과는 의견을 발표하는 장이 아니라 사실을 집적하는 백과사전이라는 점을 양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adidas (토론) 2010년 12월 16일 (목) 17:12 (KST)답변
넵 충분히 숙지했습니다 ^^. 단어 선별을 제가 잘못한것 같습니다. 왜곡보단 '그에 대한 반론' 이란 단어를 채택했어야 했는데, 실수 했습니다. 하지만 사소한 전투도 기록되어 있는 당시 역사서에 '진개의 위대한 업적 및 전투' 기록이 없는건 한번 고찰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저작권 침해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독립된 주제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만... 현행 국사책 및 국사편찬위원회에서도 고조선에 대한 '특히 연나라에게 광활한 영토를 빼앗겼다' 기록은 전무합니다. 현행 국사책엔 '중국 한나라가 고조선 영토의 일부에 군현을 설치했었다' 정도로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행 국사책 및 국사편찬위원회에서도 정론화 되어 있지 않은 내용이 '위키백과 원칙'을 근거로 적혀져 있어서, 잠시 제가 실수를 범한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은 현행 국사책에 적혀 있는 내용 그대로 적는것이 맞지 않나 합니다. 제 의견에 잘못된점 있으면 언제든지 지적해 주시고요, 감사합니다. --우물찾기 2010년 12월 16일 (목) 17:27 (KST)
김종서 박사의 주장을 비롯하여 진개 관련 내용에 대한 일부 반론은 말 그대로 소수설입니다. 위키백과는 소수설과 정설에 대해서 명백하게 선을 긋도록 하고 있으며, 소수설은 정설을 모두 소개한 뒤에, 이러이러한 소수설도 있다는 식으로 언급하는 것 이상의 편집은 불가합니다. 관련 소수설이 정설을 확실하게 무너뜨리고, 정설의 지위를 획득한 뒤에야 비로소 그 자세한 사항을 서술할 가치가 부여됩니다. 소수설의 증명 과정을 모두 서술함으로써 정설의 가치를 약화시키는 것은 명백한 중립성 위반이기 때문에, 소수설은 소수설로서 언급만 될뿐 직접적인 증명은 출처를 통해 궁금한 사람이라면 직접 찾아보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편집입니다. 이를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12월 16일 (목) 17:29 (KST)답변
참고로, 교과서는 일부 참고할만한 저서에 불과합니다. 역사학은 그보다 훨씬 방대하고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고 있으며, 관련 논문이나 저서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심지어 국사편찬위원회에도 해당 내용은 모두 서술되고 공론화되어 있습니다. 본인이 찾지 못하셨다고 해서 정론화되지 않은 내용인 것은 아닙니다. 하다못해 네이버나 다음의 백과사전에만 보아도 모두 나타나는 내용입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12월 16일 (목) 17:32 (KST)답변
제 요점을 논리정련하게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좀 난해하네요 ^^;.. 정설이 외국의 백과사전에 '독도가 다케시마'라고 표기되어 있고, '동해가 일본해'식으로 이미 구축되어버린 현황에서의 반론을 말씀드릴려고 한건데요. 저도 일목요연하게 전달해 드릴려면 좀 정리를 해야될것 같습니다. 여러 의견 감사합니다 ^^.
정설이 독도가 다케시마라고 되어 있다면, 위키백과는 원칙상 그에 따라야 합니다. 이에 대한 반론은 어디까지나 소수설일 뿐입니다. 게다가, 우물찾기 님은 모르시겠지만, 김종서 박사의 주장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많은 비판이 이루어져 대부분 잘못되었음이 밝혀진지 오래입니다. 즉, 반론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단지 김종서 박사가 자신이 맞다고 주장하고 있을 뿐이죠. 그렇기에 소수설의 하나로 다뤄줄 뿐, 아마도 영원히 정설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한마디로, 여기서 우물찾기 님이 아무리 김종서 박사의 주장을 가져와서 말씀하셔도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그것은 김종서 박사 혼자만의 주장이며, 소수설의 하나로 언급은 될 수 있어도, 그 증명과정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위키백과에 실릴 수 없습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12월 16일 (목) 17:51 (KST)답변
넵!!! 조언 감사합니다. 위키백과서 소수설에 대한 주제 다루는 부분을 좀더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 --우물찾기 2010년 12월 16일 (목) 17:59 (KST)

단군의 연도에 대한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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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서기》에 따르면 일본의 천황은 기원전 660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대의 역사학자들 가운데 그 누구도 그것을 사실이라 인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일본에 나라다운 나라가 들어선 것은 2세기 무렵에 고분시대가 되어서부터이며, 그 이전의 기록은 그저 신화로 치부할 뿐입니다. 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고대 국가들의 기원이라는 기록들에서 그 연대가 사실로 인정되는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저 중국에서조차도 공화 원년(기원전 842년) 이전의 연도는 부정확하다고 하여 그저 추정의 영역에 머무르고 있으며, 은나라 이전의 역사는 아예 그냥 신화로만 보고 있을 뿐입니다. (참고로, 최근에 중국 정부가 이를 부정하고 신화 수준의 기록들에 대해 연대를 비정하는 공정을 수행하였으며, 그 덕분에 역사학계에서 엄청난 비판을 받은 바 있습니다.)

2.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군 이야기와 대체 차이가 뭡니까? 애초에 단군신화에서 연도를 추산하는 기준이 되는 요임금조차도 신화 속의 인물입니다. 이미 여러차례 말씀드렸다시피, 헤라클레스가 하늘의 별이 된지 50년 후에 즉위했다는 말과 눈꼽만큼도 차이가 없습니다. 단군 기원인 기원전 2333년을 사실, 혹은 추정의 영역이라도 해당한다면 일본 천황의 시점도 기원전 6세기가 되는 것이고, 중국의 역사도 삼황오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 역사학에서는 아무도 그런 신화에 불과한 기록들에 근거한 연도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단군신화도 마찬가지입니다.

3. 역사는 책에 써 있는 것을 그대로 읽고 외우는 학문이 아닙니다. 역사책이라고 해도 얼마든지 부정확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전근대 사람들이 그 역사책의 기록을 그대로 믿었다한들, 현대의 역사학자들도 믿어야 한다는 근거는 되지 못합니다. 일개 역사학자보다 역사책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까? 일개 과학자보다 성경에 기록된 창조설이 옳다고 주장하는 이들과 대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Xakyntos (토론) 2014년 5월 19일 (월) 10:05 (KST)답변


[제왕운기는 국조 단군을 사실로 기록해 최초로 우리 역사의 시작을 밝혔고, 발해를 우리 역사에 최초로 포함시켰으며 고조선 이래 영토 분단 등과 관계 없이 한 핏줄 민족으로 구성돼 중국의 역사와는 다른 우리 민족사의 정통성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님의 주장과 전면 반대를 보입니다.]

고기, 위서, 삼국유사와 제왕운기, 동국통감 등 역사서들에서 고조선의 연도가 충돌하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약간씩 다른 내용이 있다 하더라도 건국 시기는 기원전 24세기~ 23세기 입니다.--182.212.6.95 (토론) 2014년 5월 19일 (월) 16:29 (KST)답변

역사책들이 서로 충돌하건 말건 그것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물론 제가 귀하의 토론 문서에 써 놓았듯이 일본서기 자체로도 충돌은 없고, 귀하가 한 말 그 자체가 현대 역사학자들의 연구 결과라는 점에서 귀하의 이중잣대는 명확해집니다. 역사책에 써 있는 것이 모두 사실이라면 곰이 사람으로 변신하고 사람이 알에서 태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귀하도 그것을 사실이라 믿지는 않고 있지 않습니까? 곰이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 사실이 아닌 신화적인 코드라면, 요임금 제위 25년 무진년은 대체 왜 사실이 아니라는 말이 문제가 됩니까? 귀하야말로 해당 연도가 정확한 사실이라 주장하는 역사학계의 공인된 출처를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는 한, 귀하의 편집은 반달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5월 19일 (월) 16:42 (KST)답변


오히려, 해당 연도가 부정확한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역사학계의 출처를 가져오시고, 그에 따라 증명하십시오. 저는 대한민국 국사교과서와 고기, 위서를 인용한 삼국유사, 동국통감을 기반하여 수정하는 것으로, 한낱 역사학계 특정 학자들의 주장을 초월합니다. 또 저는 단군 시조 설화 모든 것을 역사라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연도를 명확하게 표기했음으로, 고려, 조선시대 사관은 우리 민족의 기원은 '단군조선'이며, 이 단군조선은 '기원전 24세기에 건국되었다'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토론할 여지가 없습니다.--182.212.6.95 (토론) 2014년 5월 20일 (화) 19:35 (KST)답변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 : "많은 사람들은 고조선을 단군조선으로 알고, 교과서에까지 버젓이 기록하고 있지만 이는 부정확한 기록과 상상에 의거한 몰상식이자 소설이다. 게다가 고대국가 성립시기는 청동기시대 (서기전 10세기) 들어서라고 보는 것이 정설인데, 그보다 훨씬 전에 국가가 등장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어 고조선의 실제 성립시기는 선진의 문헌인 관자의 기록에 나오는 서기전 8~7세기로 봐야 한다. 단군조선은 신화의 영역일 뿐 역사 연구의 대상은 아니다." (한국일보)

→ 만주 지역에서 가장 이른 청동기문화는 요서지역의 하가점하층문화이다. 내몽골자치구 적봉시 지주산 유적은 서기전 2015+(-)90년으로, 교정연대는 2410+(-)140년으로서 이 연대는 지금까지 확인된 하가점하층문화 연대 가운데 가장 이른 것이다. 이 문화가 실제로 개시된 것은 유적의 연대보다는 다소 앞설 것이므로 서기전 2500년 경으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가점하층문화 유적은 길림성 서부에도 많이 분포되어 있는데 이 지역은 아직 발굴되지 않았다. 한반도에서도 서기전 25세기로 올라가는 청동기 유적이 두 곳이나 발굴되었다.

  • 문화재관리국 발굴단에 의하여 발굴된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의 고인돌 유적

다섯 기의 고인돌이 발견된 이 유적에서 채집한 숯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 측정결과는 서기전 1950+(-)200년으로 나왔는데 교정연대는 서기전 2325년경이 된다. 이 유적에서 청동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유물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므로, 이 연대를 청동기시대 연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 목포대학교 박물관에 의해서 발굴된 전남 영암군 장천리 주거지 유적

이 청동기시대 유적은 수집된 숯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 서기전 2190+(-)120년으로 나왔고 교정연대는 2630~2364년 경이 된다.

고조선 지역의 청동기 개시가 황하유역보다 앞섰다면 다른 문화수준도 그만큼 앞섰을 가능성이 있으며, 국가사회로의 진입도 그만큼 빨랐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윤내현, 고조선 연구, 일지사, 1993, 29쪽)

과연 청동기가 나와야 국가가 성립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이집트의 고대왕국과 잉카, 마야, 아즈텍 문명은 청동기 시대에 성립한 국가가 아님에도 국가로서 인정받습니다. 중남미의 경우도 석기시대였고, 고대 이집트에서 발견된 청동제품도 북방에서 온 교역품으로 분석됩니다. 인도 문명도 청동기의 영향으로 번성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청동기가 나와야 국가가 성립한다는 학설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학설입니다.

제대로 된 학설을 들고와서 위에 대한 반박을 해 보십시오. 고고학적 지식도 필요할 것입니다. Xakyntos 님의 주장은 논파된 송호정 교수의 논문과 일치합니다. 실제로 송호정 교수의 틀린 주장은 학계에서 정설로 취급하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역사학계가 항상 정확하고 옳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며, "학계의 정설은 수많은 학자들과 토론과 반박을 이겨내고 난 뒤에야 확립되는 것입니다. 반발하는 학자들까지도 모두 인정하게 된 이후에야 정설이라는 지위를 획득하는 것입니다. 즉, 학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학계의 교수들이 정설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학문의 세계에서 아예 일어날 수도 없는, 자칭 재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허구 속의 강단사학일 뿐입니다." 라고 주장한 Xakyntos 사용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위 내용은 고조선의 연대 뿐만 아니라 고조선의 청동기 문화에 관한 언급을 모조리 수정해야 한다는 것을 논증하며, 여러분들께서는 '정설'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재고해 보셔야 할 것입니다.--182.212.6.95 (토론) 2014년 5월 20일 (화) 20:25 (KST)답변

  • 참고로, 한국에 있어 '고조선'은 고고학·역사적인 면과 신화·설화적인 면이 혼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고조선'에 대한 인식은 삼국시대로부터 고려, 조선, 일제 강점기, 그 이후에서도 변화를 겪어 왔다고 여겨집니다. 실증적으로 검증된 정치 세력으로서의 고조선은 점차 그 연대가 당겨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기원전 2,333년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상태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신화나 설화, 조선 시대 이전의 고조선에 대한 설명에서는 해당 연도를 언급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양한 출처에서 비롯된 고조선의 건국 연대들은 고조선#건국 연대 및 치세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jtm71 (토론) 2014년 5월 20일 (화) 21:32 (KST)답변

'건국 연도 미상'과 '역사서의 건국 연도' 병기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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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이것은 독자 연구가 아님을 말씀드리며, 저는 다음을 고려하여 두 가지 주장의 병기를 제안합니다.

  • 현행 대한민국 국사교과서에서는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되었다고 서술되어 있음
  •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되었다는 대한민국 국민의 일반적인 상식
  • (고기,위서) 를 참고한 《삼국유사》, 《동국통감》과 《제왕운기》등의 역사서에도 서기전 24~23세기에 건국되었다고 표기

- 학계에서 논의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 주제가 반드시 거부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 다른 정책과 지침을 충족하여 기술하였더라도 일부의 시각만이 과도하게 반영된 경우에는 다른 방향의 관점의 내용이 균형있게 보태지기 전에는 중립적 시각의 위배가 될 수 있습니다.

라는 위키백과 : 비주류 이론의 내용과 위키백과 : 중립성의 요건에 근거하여, 일부의 시각만이 반영된 '건국 연도 미상'만을 표기하는 것은 중립적 시각에 위배가 될 수 있습니다.

주류 학설을 존중하여, 아래와 같이 건국 연도 미상을 가장 먼저 표기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고조선 ?(기원전 24세기) ~ 기원전 108년

이 토론에서 절충안을 낼 때까지 편집을 하지 않을 것이라 약속합니다. 이에 대한 의견 부탁드립니다.--182.212.6.95 (토론) 2014년 5월 20일 (화) 23:06 (KST)답변

1. 귀하는 윤내현을 비롯한 소수설을 근거로 주류학설이 틀렸다는 증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귀하의 그 발언은 완벽하게 틀렸습니다. 윤내현을 비롯한 소수설은 주류학설이 틀렸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주장은 공인된 출처를 통해 검토를 받아야 하며 그러한 검토를 할 수 있는 곳은 역사학계라고 하는 학문의 전당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윤내현의 주장은 역사학계의 검토를 통과하지 못하여 전혀 인정받지 않고 있습니다. 귀하의 머리 속에서는 윤내현의 주장이 옳고 주류학설이 잘못된 것일지 몰라도, 학문의 세계에서는 윤내현의 주장이 틀렸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즉, 귀하가 인용한 윤내현의 주장은 주류 학설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근거가 아니라 주류학설에 대항하는 소수설일 뿐입니다.
2. 이에 대해서 귀하는 아마도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은 주류학설이 단합해서 윤내현의 주장을 묵살하고 있는 것이라고. 아니, 식민사학의 후계자들이 민족사학을 하는 윤내현을 탄압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죠. 물론 윤내현 본인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위키백과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지침으로서 바로 위와 같은 주장을 경계하고 철저하게 검증해야 할 사안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미 제가 수차례나 인용한 바로 이 구절 말입니다.
'지지를 얻지 못하는 주장이나, 관련 학계의 주요 관점과 대치되는 주장. 지지자들이 그들을 침묵하게 하려는 음모가 있다고 주장할 때에는 특별히 주의할 것
3. 즉, 귀하나 윤내현이 아무리 자신들이 옳고 식민사학계가 밥그릇 뺏길까 두려워 자신들을 탄압한다고 외쳐봤자 위키백과는 물론이고 학문의 세계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을 음모론으로 취급될 뿐입니다. 그리고 그런 음모론을 근거로 주류 학설을 삭제하거나 수정할 것을 주장하고 강행하는 귀하의 행동은 명명백백한 위키백과의 원칙 위반이며, 차단 대상입니다.
4. 위키백과의 중립성의 원칙은 존재하는 모든 주장을 동등하게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문서의 구성이나 설명에서 소수 의견이 다수 의견보다 두드러져서는 안 됩니다.라는 조항을 보시기 바랍니다. 위키백과에서 말하는 중립은 다수 의견, 즉 정설을 중심으로 삼고, 소수 의견을 비중에 따라 서술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하의 위 제안은 인정될 수 없습니다. 정설은 기원전 2333년이라는 연도가 사실이 아닌 신화이며, 고조선의 정확한 건국 연대는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에 대항하는 소수설은 고조선#건국 연대 및 치세 같은 항목에서 별도로 서술되어야 하는 것이 위키백과의 원칙에 부합합니다.
5. 정리하겠습니다. 귀하의 제안은 인정될 수 없습니다. 기원전 2333년 혹은 기원전 24세기가 실제 건국 연도라는 주장은 명백한 소수설이며, 이러한 소수설을 위키백과의 메인 표제에 싣는 것은 명백한 중립성 위반입니다. 귀하가 이러한 주장을 싣고 싶으시다면, 본문 중에 별도로 서술하십시오. 아니, 이미 그렇게 서술되어 있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5월 21일 (수) 00:19 (KST)답변

음모론을 근거로 주류 학설을 삭제하거나 수정할 것을 주장하고 강행하는 귀하의 행동은 명명백백한 위키백과의 원칙 위반이며, 차단 대상입니다.

→저는 음모론을 근거로 하지 않았습니다. 논파된 주장을 옹호하면서 논파한 주장을 '음모론'으로 매도하는 짓 좀 그만하시죠. 위에 국사 교과서, 사람들의 상식, 역사서 등 납득할 만한 근거를 담았습니다. 소수설이 주류설의 의견보다 두드러지지는 않습니다. 괄호 안에 한해서 부속되니까요. 제가 두 내용을 동등하게 다루었다는 주장을 논증하십시오.

학계에서 논의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 주제가 반드시 거부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이 부분에서 해명을 해 보시죠.

그리고 고고학적 증거가 역사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게 아니라, 인정을 안하는 건뎁쇼? 말 그대로 '고고학적 증거'입니다. 그렇게 정확하다고 주장하는 역사학계가 윤내현 학설의 근간이 되는 고고학적 증거을 무시하고, 청동기 문화가 되어야 국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송호정의 궤변을 세계 여러 나라를 예로 논파하였는데

인정받지 못한다 = 틀렸다? 아닙니다. 인정하지 않는다 = 맞았다 라는 불문율이 역사학계에서 만연하죠.

님이 그렇게 완벽하다고 한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정설 (송호정이 주장하면 주위 교수들이 복창하는)은 한낱 윤내현의 소수설에 논파되었으며, 그것은 결코 음모론이 아님이 드러났습니다.

음모론에 근거하여 수정한 것이 아니고, 적절한 근거를 위에서 제시하였으므로, 음모론과는 거리가 멉니다. '매도' 좀 그만하세요.그리고 틀린 학설에 순응해야 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이제는 고고학적 기록에 의존할테니.

논파된 학설을 아직도 맞다고 주장하시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고고학적 증거에 따라 잘못된 내용을 수정합니다. 비주류 이론이 아니라, '고고학적 증거'니까요. 역시, 애초에 님은 토론할 의지조차 없고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만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토론을 악용한 것입니다.

--182.212.6.95 (토론) 2014년 5월 21일 (수) 06:33 (KST)답변

1. 귀하가 하는 행동 그 자체가 이미 음모론인데 말입니다. 대체 몇 번이나 이 위키백과의 정책을 보여드려야 합니까? '지지를 얻지 못하는 주장이나, 관련 학계의 주요 관점과 대치되는 주장. 지지자들이 그들을 침묵하게 하려는 음모가 있다고 주장할 때에는 특별히 주의할 것 귀하가 주류사학계가 식민사학이라 말씀한 것만 해도 수차례이며, 귀하가 신봉하는 윤내현을 비롯한 소수설의 주장 그 자체에도 이미 “식민사학계가 자신들의 주장을 묵살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음모론이 아니면 무엇이 음모론입니까? 귀하 혼자서 이런 주장을 믿는다고 해서 그것이 음모론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위키백과의 지침 그 자체를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는 이런 주장을 지금 논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부터가 웃기는 일입니다.
2. 마찬가지로, 귀하가 혼자서 주류학설이 논파되었다 생각하는 것은 아무 상관 없습니다만, 이렇게 위키백과에서 논파되었다 주장하는 것은 엄연히 귀하에게 거증의 의무가 있는 사항입니다. 귀하가 아무리 역사서니 뭐니 가져와도 그것이 학계의 연구를 능가할 수는 없습니다. 일본서기나 삼황오제를 대체 몇 번이나 말씀드려야 합니까? 귀하가 윤내현을 비롯한 소수설의 주장을 가져와도 역시 전혀 거증이 되지 않습니다. 윤내현의 주장은 그 자체로 음모론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제하더라도 주류 학계에서 반박을 받고 폐기처분된 것이라고 이미 수차례나 말씀드렸습니다. 귀하 혼자 해당 주장이 주류 학설을 논파했다고 생각해봤자 아무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귀하가 가져와야할 증거는 주류 학계의 학설이 확실하게 틀렸고 윤내현이 옳다는 신뢰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윤내현의 주장은 주장이지 사실이 아닙니다.
3. 고고학을 말씀하셨습니까? 윤내현이 감추고 있는 사실을 한 번 보여드릴까요?
첫째, 고인돌이 모두 청동기시대 유물이라는 것 자체가 학계의 정설이 아니라는 것. 고인돌에 부장된 유물 및 수습된 탄화물 등을 분석해보면 신석기 시대 말기부터 초기 철기시대까지 폭넓게 분포하고 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입니다. 물론 청동기시대에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긴 하지만. 애초에 양평 양수리 고인돌 자체가 고인돌이 신석기 시대 말기에도 축조되었다는 증거로 언급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국박물관연구회, 1999.7.5, 문예마당)
둘째, 영암 장천리 유적의 편년. 장천리에서 출토된 목탄의 연대 분석 결과가 BP4140년(기원전 2100년대)으로 나온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작 발굴을 직접 진행한 목포대학교박물관(물론 고고학과)에서는 이 목탄의 연대는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공반 유물들의 양식과 분포가 모두 송국리 유적으로 대표되는 기원전 5~3세기와 일치하기 때문이죠. 발굴된 유물, 특히 탄화물과 같은 종류는 외부 혼입을 비롯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그 단독으로는 신뢰성을 판단하기 어렵고 공반 유물이나 기타 다른 연대 측정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은 고고학의 상식입니다.(목포대학교박물관, 《영암 장천리 주거지 Ⅱ》, 1986, 보고서 링크이니 직접 확인하시길)
윤내현이라는 학자가 얼마나 형편없는 사기꾼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로군요. 고고학을 말씀하셨으니 고고학계의 정설 및 실제 발굴을 진행한 당사자의 보고서를 찾아 봤습니다. 그러니 이런 결과가 나오는군요. 자, 과연 학계의 정설이 논파되었습니까? 고고학 운운하려거든 윤내현 같은 이의 책 말고 실제 고고학 저서나 발굴 보고서를 보십시오. 그럼 이렇게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4. 이상과 같이 귀하가 논파되었다는 증거로 가져온 내용 그 자체가 거짓임을 명백한 증거를 통해 밝혔습니다. 사실 제가 이렇게 일일히 찾아서 밝히지 않아도 귀하가 가져온 내용은 정설을 논파한 것이 아니라 논파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소수설일 뿐이라는 것은 명백합니다만, 귀하가 하도 강짜를 부리니 한 번 확인해봤습니다. 이제 뭐라고 반박하실 것입니까?--Xakyntos (토론) 2014년 5월 21일 (수) 10:53 (KST)답변

단군 왕검을 고조선 왕 재위 목록에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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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합니다. 이것은 토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고조선이라는 국가는 관자와 사기 등의 문헌과 한사군이라는 존재를 통해 실존하였음이 입증되었고, 그 고조선이라는 나라는 단군이라는 사람에 의해 건국되었다고 우리나라 역사서에서 말하고 있죠. 이것을 부정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단군 신화를 부정한다는 것에 이의를 달지는 않습니다만 단군의 실존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묵과할 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단군의 존재에 대해서 학계에서 왈가왈부하여도 단군이 실존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댈 수 없습니다. 단군이 실존하지 않았다는 근거를 대지 못하는 한 단군은 실존한 인물로 취급되어야죠.

삼국사기에서도 단군은 '선인 왕검'으로, 고기, 삼국유사, 동국통감, 제왕운기 등에서도 단군이 등장하며 강화도에서도 삼랑산성은 단군의 아들과 관련된 설화가 있으며 조선시대 때도 단군과 관련된 기록이 넘쳐나며 단군의 제사까지 지냈다고 하죠.

  • 위키백과 : 고조선의 내용입니다.

단군왕검은 고조선 사회의 제주이자 군장으로, 단군은 대제사장적인 성격을 많이 담고 있으며 왕검은 국가를 통치하는 대군주의 의미를 띠고 있다고 해석한다. 즉 제정일치의 지도자이다. 방언의 분포와 비교언어학적으로 살펴볼 때에도 제사장과 정치적 지도자를 함께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 위키백과 : 고조선의 내용입니다.

단군(檀君 또는 壇君) 또는 단군왕검(檀君王儉)은 한민족의 신화적인 시조이자 '고조선의 건국자'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역사서에 등장하는 인물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그를 한민족의 조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제, 기대합니다. 조선사편수회가 악의적으로 훼손한 역사와 그것을 거리낌 없이 그대로 계승한 학설을. 그리고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겠습니다. 토론을 한다기 보다는 생각을 정당화시키는 자리가 되어버리니까요.

--182.212.6.95 (토론) 2014년 6월 4일 (수) 15:37 (KST)답변

바로 여기서 단군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하나의 상징적인 표현이라는 기존 학계의 입장 (후략) - 118p

단군조선시대에 단군이라는 고유한 인물이 존재했다고 보기 어렵다. 단지 여러 명의 단군(제사장)이 여러 지역에서 부족 국가를 이끌었던 것이 초기 국가를 형성하던 단계의 우리 역사 모습인 것이다. - 125p
송호정, 《단군, 만들어진 신화》, 도서출판 산처럼, 2004

1. 원하시는 기존 학계의 입장입니다. 됐습니까? 토론의 여지가 없는 것은 귀하의 주장이 아니라 제 편집입니다.
2. “조선사편수회가 악의적으로 훼손한 역사와 그것을 거리낌 없이 그대로 계승한 학설을”이라 쓰셨군요. 귀하는 또 다시 인신공격을 하셨습니다. 차단을 신청하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6월 4일 (수) 21:12 (KST)답변

누가 기존 학계의 입장입니까? 송호정이? 2004년에??? 딴나라에서 사는 것은 아니고요?

이병도는 이렇게 말년에 참회하였지만

역사를 이야기하려면 용어의 뜻부터 알자. 1. 단군 : 檀君의 뜻이 무엇인지 서술하시오. 모르면 이야기 하지 말 것. 2. 신화라고 하는 정의가 무엇인가? 삼국유사 및 제왕운기는 신화집인가? 3.인간을 널리 이롭게(홍익인간[弘益人間])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太白山) 꼭대기 신단수(神壇樹) 밑에 내려와 여기를 신시(神市)라고 하니 이로부터 환웅천왕이라 불렀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 명(命), 병(病), 형(刑), 선(善), 악(惡) 등 무릇 인간의 3백 60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고 인간세상에 살며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 홍익인간은 "인간을 널리 이롭게하라"는 뜻이 아니다. 어디에서 왔으며, 무슨 뜻인가? 弘

4.천부인이 없는 사람은 한국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단군조선을 부정한다면, 단군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 것. 안다면 서술하시오. 5. 신단수는 기독경의 생명수, 석가모니의 보리수, 미륵의 용화수와 같은 뜻이라고 한다. 신단수는 무슨 뜻인가? 6. 신시(신불)은 천독이라고 하는 신선들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 신시에 대해 서술하시오. 단군조선과는 다른 아사달인가? 7. 환웅은 우리나라 절에 대웅전에 모셔져 있었다고 하는 환웅은 단군전의 임금님으로 아는데 환웅은 환국의 서자로 단국을 설립했다고 하는데,부정하면? 단군은 사생아가 된다 .맞는지 확인요망. 8. 환웅을 모시는 신사가 일본에는 많다고 한다. 과연 일본의 신교는 믿을 수 있고 우리나라 고대사는 부정하는 이유는? 그리고 일본의 신교의 신은 가리가미인데 이 천신은 어디에서 갔나? 천손강림은 단군신화고, 천신강림은 환웅신화다. 서로의 연관성을 서술하시오. 9. 환웅이래 단국까지 전부 하늘에 천제를 모셨다는데, 천제를 모시면, 샤머니즘인가? 종교인가? 왜 천왕이 천제를 지낸다는 것은 종교가 되지 못하는가? 10. 환웅천왕이라고 했다. 왜 이렇게 환웅에 천왕이라고 했나? 이름은 빼고 호칭이라고 하였다. 제천장이면 사제? 그럼 종교가 아닌가? 11. 풍백, 운사, 우사는 파람, 구름, 비로 삼국사시 풍류도와 관련이 있는데, 불교, 유교, 도교와의 관계를 설명하시오. 12. 풍백, 운사, 우사는 삼황오제의 삼황과 관련이 있는데 관계를 설명하시오. 13. 풍백, 운사, 우사가 삼정승제도와 같고, 현대의 입법, 행정, 사법제도와 같은 정치제도라고 하는데, 그럼 고등 정치가 아닌가? 14. 곡, 명, 병, 형, 선악. 이것은 3황5제의 5제에 대한 것인데, 아는데도 무슨 제도인지 설명하시오. 참고 윷놀이 도개걸윷모. 5, 참고, 세속오계, 오상 등도 관련이 있슴. 15. 인간의 360가지의 일을 주관했다는데 무엇을 의미하는지 서술하시오. (예, 8리훈) 16. 인간세상에 살며(??? 천신인가.. 천신이라고 나온다, 인정하지 않는 곳에서)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어떤 방법으로 단군전 즉 기원전 2,333년전의 일인데, 이렇게 이야기할까? 17. 일본의 천손강림사상은 인정하는가? 천신강림과 천손강림사상, 왜 난생설화가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많은가? 서술하시오.

등등등... 삼국유사의 내용이니,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송호정이 단순하게 단군을 제사장. 부족사회로 만들어진 신화라고 하는데, 내용이 너무 많다. 과연 알고 떠드는지 설명하시오.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1일 (토) 14:19 (KST)답변

문헌 상의 기록에 따라 실존했던 국가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기록의 신뢰도가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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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상의 기록에 따라 실존했던 국가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기록의 신뢰도가 낮고'라는 표현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왜냐하면 고기, 삼국유사와 동국통감 등의 우리나라 역사서에서도 고조선의 실존을 기록하였고 관자, 산해경, 사기,한서 지리지 등의 중국 사서에서 이 부분은 고조선의 실존을 사실대로 기재하는 것 외에는 왜곡할 가능성이 적은데 '신뢰도'가 낮다 라고 표현한 근거는 무엇인지요? 학계에서 검토되고 수용된 정설이 있다면 알려주십시오.

'고조선사 전공이며 고조선의 건국연대를 기원전 7세기로 축소시켜버린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도 “학계 시대사 구분에 역사적 실체로 판명된 고조선을 넣어야 한다”라고 하였죠.

고조선이 없었으면 연나라에서 온 위만이 왕위를 빼앗을 수 없었으며 한사군이 생기지도 못했을 겁니다.--182.212.6.95 (토론) 2014년 6월 4일 (수) 16:06 (KST)답변

1. 고조선을 기록한 사료에 대해서 좀 공부라도 하고 오시지요. 현재 학술적으로 인정되는 고조선의 역사 대부분은 《위략》이라는 단 1가지 사료에 근거합니다. 그리고 이 《위략》에 기록된 고조선은 철저하게 기자조선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기자조선이 현재 학계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는 아실런지 모르겠군요. 물론 기자조선을 제외하더라도 《위략》의 문제점은 많죠. 만리장성이 건설되자 부왕이 이를 두려워해서 진나라에 복속했고, 그로부터 적어도 20년 이상이 지난 뒤에 진승-오광의 난이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만리장성은 기원전 214년에 건설되었고, 진승 오광의 난은 기원전 209년의 일입니다. 20년?? 애초에 이렇게 신뢰성이 극도로 낮기 때문에 《위략》을 비롯한 고조선 관계 사료는 철저한 사료비판을 통해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제발 이런 기초적인 것은 좀 공부라도 하고 오십시오.
2. “고조선의 건국연대를 기원전 7세기로 축소시켜버린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 허위사실 유포 및 인신 공격입니다. 차단을 요청하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6월 4일 (수) 21:20 (KST)답변

고조선은 어느나라입니까? 처음 듣는 古씨조선인데도 그런데도 있나요? 이씨조선은 아는데 고씨조선은? 기자조선은 기자의 조선이고... 그렇지 않나요? 단군조선을 부정하면 고대사를 할 이유가 없죠. 아는게 없는데. 1. 기자는 은나라에서 왔습니다. 은나라에는 소호금천이 있었고 伊尹은 현재 윤씨의 선조라고 합니다. 이윤은 자부선인의 제자라고 해서 아주 영특하고 대단했다고 하는데요. 소호금천의 한 핏줄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 중국이야긴데, 왜 이야기하나요? 내가 알기에는 은나라는 동이족이라, 모두 동이의 제후국으로 아는데 단군조선이 부족국이라고 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요? 2. 은나라의 문자체는 주나라와 다릅니다. 1899년 발견된 금문과 갑골문이 있는데, 금문/갑골문에 대해 해석이 가능하시면, 기자조선의 기자는 어느나라 사람이고 왜 번한조선의 왕이 되었을까요? 3. 아참 번한조선 자체를 부정하시는군요. 번한조선은 위만에게 속아 꼭 왜넘처럼 들어가 번한조선이 위만에게 그리고 한에게 패망했지요? 기자의 성은 무엇이었나요? 상관없는 원시부족국가와 은나라와 더 상관이 없는데, 기자조선을 의미하는 이유는? 삼한조선인데, 마한조선, 진한조선, 번한조선.. 삼한조선이네요. 그럼 하나(한)조선 아닌가요? 조선의 뜻은? 왜 -조선이 이렇게 많은지.. 일일이 관계 자료는 첨부하지 않겠습니다. --Canendo (토론) 2015년 4월 11일 (토) 14:38 (KST)답변

보호 기간 종료 후 수정할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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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조선(古朝鮮,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108년)은 한국의 역사상 최초의 국가로 일컬어지는 고대 국가이다.
→ 고조선(古朝鮮,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108년)은 대한민국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역사상 최초의 고대 국가이다.
→ 고조선(古朝鮮,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108년)은 대한민국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고대 국가이다.
수정 근거 : [고조선,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62323&cid=40942&categoryId=33374]에서 한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국가 라는 표현을 인용.[네이버 지식백과] 고조선 [古朝鮮]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보시는 분들의 견해는 어떠신지요?--Aubelumiere (토론) 2014년 7월 25일 (금) 20:18 (KST)답변
이렇게 논쟁 여부도 없는 단순하고 당연한 내용에는 아무런 이의가 없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25일 (금) 22:09 (KST)답변

"대한민국과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역사"라고 나눠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나요? -- ChongDae (토론) 2014년 8월 1일 (금) 13:55 (KST)답변

국사교과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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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국사 교과서는 고조선의 강역으로 추측되는 랴오닝 성 및 한반도의 고고학 발굴 결과를 토대로 기원전 2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에 청동기 시대가 본격화된다고 서술하고 있으며[6][7] 이에 따라 고조선의 건국 시기도 기원전 2333년으로 단정하였다.

강조한 부분은 사용자:Lhrdrth가 추가한 문장으로, 해당 문장대로 국사교과서가 연대를 단정하였는지 여부에 대하여 심각한 문제가 존재합니다.

첫째로 해당 문장의 실제 변화 사항은 아래와 같습니다.
  • 2007년 이전 :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한다(기원전 2333년)
  • 2007년 개정 :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기원전 2333년)
보시다시피 핵심적인 개정 부분인 “하였다고 한다”라는 서술어가 목적어로 삼는 부분은 건국 주체(단군왕검이 건국)에 대한 내용이며, 연도는 서술어와 무관하게 괄호를 통해 제시되고 있습니다. 물론 신문기사 역시 건국 시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습니다. 즉, 사용자:Lhrdrth는 교과서 본문은 물론이고 신문기사에서조차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은 자의적인 해석을 통해 교과서 개정의 중심을 건국 연대로 맞추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둘째, 현재 대한민국의 주류 역사학계에서 고조선의 건국 연대를 기원전 2333년을 정확하게 명시하여 사실이라 말하는 학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해당 연대는 신화적인 연대로, 성경이 말하는 6000년 전에 천지창조가 있었다는 말과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국사교과서의 집필진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에 따르면”이라는 단서를 달아 건국 주체나 건국 연대가 확실한 사실인지 아닌지를 모호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실제 사실이라고 명시하면 국내외 학자들의 거센 비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를 모호하게 서술하여 넘어가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점은 해당 개정에 대한 학계의 비판에서도 여실하게 제시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역사교육)는 “기원전 2333년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했다고 확정지을 수 없다”며 “사료에 바탕해 엄밀해야 써야 할 교과서를 이렇게 서술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이처럼 학자들이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는 부분을 실제 교과서 원문에서도 유추가 불가능한 자의적인 해석으로 단정했다라고 서술하는 것은 명백한 독자연구에 해당합니다.

이상과 같은 근거로 사용자:Lhrdrth의 해당 편집은 명백한 오류임을 밝히는 바입니다. 그러나 저는 사용자:Lhrdrth가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논쟁의 여지가 있을지도 모를 해당 표현 대신 신문기사에 직접적으로 명시된 표현으로 바꾸어 수정한 바 있습니다.

새 교과서는 단군의 고조선 건국과 관련해 ‘~ 건국하였다고 한다’를 ‘건국하였다’로 더 확정적으로 썼다. - 한겨레 신문 기사 중

보시다시피 단순히 단정하였다는 표현이 아닌 이전보다는 더 확정적으로 썼다는 표현으로써 해당 교과서 개정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표현입니다. 참고로 한겨레의 기사 역시 해당 개정의 목적 대상이 건국 연대가 아닌 건국 사실 및 주체임을 확실하게 표기하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해당 편집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근거를 들어 제시하였습니다. 사용자:Lhrdrth는 이에 대해 해명하십시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25일 (금) 22:29 (KST)답변

귀하의 문장 분석 부분은 제가 되도록 잘 이해하려고 자세히 정독했지만 죄송스럽지만 이해할 수가 없군요. 귀하의 일방적인 주장보다는 이렇게 서술 방식을 변경한 국사편찬위원회의 입장을 들어봅시다.

이같은 수정에 대해 <국사편찬위원회>의 설명은 당당하다. 장득진은 "그 동안 사서에는 나오지만 고고학적 증거가 불충분했던 고조선 건국 시기가 최근 연구 성과로 근거가 뚜렷해짐에 따라 서술 방식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이종호 이형석 저, '고조선, 신화에서 역사로" 28쪽

보셨습니까? 분명히 "고조선 건국 시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장득진이라는 분은 국사편찬위원회 소속으로 "교육과학기술부"가 발간하고 "국사편찬위원회"와 "국정도서편찬위원회"가 편찬한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의 연구진입니다. 귀하가 무슨 자료로서 주장하고 논리를 펼치든 그렇게 직접 내용을 수정한 측에서 이렇게 밝힌 이상 귀하의 주장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청동기 유물 발굴 연대가 올라가서 고조선 건국 시기를 기원전 2333년으로 확정하였으므로 "대한민국의 국사 교과서는 고조선의 강역으로 추측되는 랴오닝 성 및 한반도의 고고학 발굴 결과를 토대로 기원전 2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에 청동기 시대가 본격화된다고 서술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고조선의 건국 시기도 기원전 2333년으로 단정하였다."라는 저의 편집은 아무런 오류가 없습니다. 또한 국사편찬위원회에서도 밝혔듯이 엄연히 명백한 고고학적 성과, 연구 결과로 단정한 부분을 무슨 신화적인 연대, 성경 운운하시는데 이것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명백한 사실 호도입니다. 한번만 더 이렇게 주장하시면 제재를 요청하겠습니다. 또 자꾸 "단정" 부분을 가지고 말씀하시는데 앞에서 말한대로 국사편찬위원회는 "근거가 뚜렷"하다고 했습니다. 이는 단정하고 다를바가 없는 말입니다. 귀하가 제시한 자료에서도 "확정적으로 썼다"라고 했습니다. 확정이 뭡니까? 단정하고 다를바가 없는 말입니다. 제가 제시한 자료는 "공식 편입했다"라고 했습니다. 이도 단정하고 다를바가 없습니다. 귀하가 정 불만이면 "단정했다"대신에 "확정했다",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정도로는 수정에 찬성하지만 귀하의 주장대로 "더 확정적으로 썼다."는 불가합니다. 더라는 수식어때문에 "아직까지 확정적이지는 않지만 약간 더 진전하여 확정적인 것인 마냥 인정했다"라는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꾸 송호정같은 일부 소고조선론자들의 주장으로 "대한민국의 주류 역사학계"운운하시면서 압도적인 다수설로 자꾸 몰아가시는데 일단 국사 교과서 서술을 얘기하는데 송호정같은 제3자의 견해가 끼어들 여지도 없고 제가 예를 든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국사편찬위원회"와 "국정도서편찬위원회"가 편찬한 것입니다. 이런 국가적 공식 기관의 견해야말로 진정한 현재 주류, 다수설입니다. 또한 시기도 가장 최근입니다.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국사 교과서는 2012년 판입니다. 과거에 뭐라고 했던 현재는 고조선의 건국시기를 기원전 2333년으로 확정적으로 보는 것이 엄연히 주류, 다수설입니다. 국사교과서 연구진과 집필진을 보면 국사편찬위원회, 서울대학교, 한국학 중앙연구원, 교육과학기술원, 과학기술부 그외 연세, 전남, 목포, 이화대학교 교수등등 국가적 공식 기관에서 오신 분들입니다. 송호정같은 몇몇 소고조선론자의 주장으로 마치 소수설인양 몰아가는 것은 명백한 귀하의 오류입니다. 주의하십시오.
이에 한가지 더 입장을 밝히자면 국사 교과서가 "낙랑군 평양설"을 사실상 부정하는 입장으로 서술한 것은 귀하도 잘아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방금 위에서 언급한 이유로 귀하가 주장하는 "낙랑군 평양설"이 이론의 여지가 없는 압도적 주류 다수설이라는 주장에 이제는 명백히 반대함을 밝힙니다. "국사편찬위원회"와 "국정도서편찬위원회"가 인정하고 앞서 밝힌 수많은 국가적 공식 기관의 견해야말로 진정한 다수설이고 주류설입니다. 그러므로 1달 후 낙랑군 문서가 보호에서 풀리면 낙랑군 토론 문서에 이런 입장을 밝혀 공식적인 근거 자료를 만든 후 낙랑군 문서에 대폭 손질을 가할 것임을 알려드립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27일 (일) 16:25 (KST)답변
현행 국사 교과서가 낙랑군=평양을 일절 언급도 하지않지만 이를 부인한다는 명백한 자료는 아래의, 국사 교과서에 삽입된 지도입니다. 위만조선 멸망 후의 각 세력권 지도인데 국내성, 졸본까지 구체적으로 위치를 언급하지만 대동강, 평양 지역에는 낙랑군의 그림자조차도 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http://histopia.net/kh/data/038.jpg
국사 교과서가 일반적인 주류, 다수설이 아니라고 하면 국가가 앞장서서 학생들에게 거짓을 가르친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이며 적어도 국사 교과서가 이렇게 낙랑군 평양설을 부인하는 이상 사용자:Xakyntos가 창조론, 진화론에 비유하면서까지 낙랑군 평양설을 반박하는 이론을 터무니없이 폄하하는 것은 위키백과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사실 왜곡이므로 앞으로는 주의하시기를 당부드립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27일 (일) 17:33 (KST)답변
교과서명 심사본 내용 수정·보완 권고사항 수정·보완 결과 미반영 사유
(주)금성출판사 29 실제로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가 상당히 발달한 기원전 10세기 이후에 성립되었을 것이다. 관련 문장 재검토 요망 (보완하지 않음) 고조선이 기원전 7세기 전후에 성립되었다는 명확한 논거도 없으며, 특정 견해에 치우칠 우려가 있음. 현재의 문장은 기원전 7세기 전후 성립설까지 아우를 수 있는 포괄적인 표현임.
(주)리베르스쿨 24 중국에서 수 많은 나라가 명멸하는 가운데 고조선은 2,000년 넘게 존속하였다 재검토 요망 중국에서 수 많은 나라가 명멸하는 가운데 고조선은 2,000년 넘게 존속하였다.’ 삭제

1. 위 표는 2013년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검정에서 각 출판사에 하달된 수정·보완 사항 중 고조선 건국 연대와 관련된 항목들입니다. 이 두 출판사를 제외하면 건국 연대와 관련된 수정 사항은 없습니다. (출처) 보시다시피 두 교과서 모두 기원전 2333년이 실제 연도가 아님을 명백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금성 교과서는 기원전 10세기로 이후로 명시하고 있으며, 리베르스쿨은 2000년이라는 존속 기간을 삭제하여 역시 건국 연대가 불분명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금성교과서의 수정 사항에는 더욱 특기할 사항이 있는데, 해당 문장을 수정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기원전 7세기설이 명확하지 않다고 들고 있지요. 즉, 2013년도 한국사 교과서의 편집 지침으로 수정하라 하달된 내용이 기원전 7세기경이 실제 성립 연대라는 내용이라는 의미입니다. 2012년 교과서요? 어느 쪽이 최신입니까?

종래 우리 학계에서는 구체적 정치체가 등장하기 위한 전제요소인 農耕 및 靑銅器의 출현, 즉 청동기문화의 개시연대와 연결시켜≪삼국유사≫등에 나타나 있는 단군 관련 연대를 신화적 성격의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런데 이를 보다 면밀히 검토하면 단군 관련 연대는 단순히 신화 차원의 그것이 아니라 보다 실제적인 내용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즉 단군신화의 내용은 한반도의 신석기문화를 담당한 고아시아족의 문화양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곰숭배적 요소와 아울러 샤먼적 성격을 갖고 있는 단군의 존재는 고아시아족의 문화내용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비록 구체적 정치체로 등장한 단계는 아니지만 단군 관련 연대는 결코 신화적 성격의 그것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고 하겠다.

2. 국편위의 역사 편찬 사업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도 및 대표성이 있는 통사인 《한국사》 신편의 내용입니다. 고조선의 건국 연대에 대한 항목으로서 보시다시피 정치체(=국가)가 실제로 등장한 연도는 아니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2333년에 대해서 그나마 가장 우호적으로 해석한 것이 이 정도입니다. 장득진 실장의 발언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장 실장은 "이전 역사교과서에서는 고조선을 비롯한 한반도의 국가는 청동기시대부터 존재했다고 밝히면서도 청동기 보급시기를 최고 기원전 15세기로 잡았다"며 "이 탓에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됐다는 고조선의 역사와 맞지 않아 배우는 학생들이 의아해 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교과서에서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단군왕검에 의해 건국됐다고 적극적으로 서술되지 못한 이유는 이 시기에 청동기가 보급됐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연구성과가 충분하지 못한 탓이 크다.

장 실장은 "우리가 만주 등의 유적들에 접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동안 청동기문화를 토대로 세워진 고조선의 존재를 뒷받침할 만한 실증적인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최근 들어 관련 연구성과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이번 교과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한반도 청동기 보급시기를 기원전 2000년쯤까지 앞당겼다"고 분석했다.

세계일보 기사에 훨씬 더 자세한 인터뷰 내용이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청동기 보급 시기를 앞당긴 것이며 기원전 2333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서술이라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앞서 말한 한겨레 기사 그대로 조금 더 확정적으로 썼다는 것이 본질에 훨씬 가깝습니다. 게다가 한국사학계 일반에서 거세게 반발하였던 사실까지 생각하면 답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송호정:고고학계에서도 전형적인 청동기 유물은 기원전 10세기 위로 안 올라가는 게 주류입니다. 은·주 시대로 올려볼 수 있는 유적들이 있긴 하지만, 더 많은 학계의 논의를 반영하지 않고, 한두 유적만 근거로 교과서를 수정하는 것은 안 됩니다. 단군신화와 고조선 서술 문제는 내용 수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원래 어법에 맞는 문장을 틀리게 고친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교과서 편찬 수준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죠. ‘…고 한다’를 빼고 그냥 ‘건국하였다’로 했다고 해서 신화를 역사로 만들었다고까지 보는 언론의 호들갑도 사실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3. 경향신문 기사의 관련 대담. 공식편입했다는 문장 자체가 허구인 것을 어쩌란 말입니까? 애초에 학계의 연구 흐름 자체가 단군신화를 역사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며, 그 결과로 단군신화에 고조선의 건국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이 신화적 코드로 들어 있다고 보는 것이 원래부터 공식적인 견해입니다. 애초에 신화를 신화로만 본 것도 아니요 신화를 그대로 역사라고 보는 것도 아닐진대 이를 두고 전에는 공식이 아니었다는 것처럼 공식편입했다라고 쓰는 언론의 행태는 황색언론이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4. 정리하죠. 귀하야말로 단정했다라고 할 수 있는 근거를 가져오십시오. 저는 적어도 더 확정적으로 썼다는 명확한 소스를 가져왔으며, 귀하가 단정했다는 근거로 가져온 것의 더 자세한 내용을 비롯해서 역사학계 일반의 반박까지 제시했습니다. 국사 교과서 집필진이 미치지 않는 이상 기원전 2333년을 실제 건국 연도로 단정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해당 내용은 어디까지나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그렇게 적혀있다는 말일 뿐입니다.

5. 귀하가 링크한 지도의 캡션은 이렇습니다. “여러 나라의 성장” 한국사에 해당하는 국가들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죠. 그렇기에 한국사라고 보기 어려운 읍루(함경북도 및 연해주 지방)가 없군요. 한국사에 해당하는 국가가 아닌 낙랑군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만. 낙랑군은 말할것도 없고 요동군을 비롯해서 아예 중국에 대한 흔적이라고는 전혀 없는 지도에서 낙랑군이 없으니 이게 평양에 낙랑군이 없다는 증거라구요? 그럼 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은 중국과 일본도 없는 국가겠군요.

6. 불행히도 귀하가 아무리 외쳐봤자 국사 교과서에는 멀쩡히 낙랑군(한군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지 민족주의적인 이유로 낙랑군의 역사와 의의를 축소해서 기록하고 위치를 명확하게 표기하지 않으려 했을 뿐, 없다고 명시하지도 않았고 위치가 어디인지 확인 가능한 내용은 아래처럼 멀쩡하게 들어 있습니다. 결국 귀하가 위에 써 놓은 행동을 하는 것은 그저 반달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28일 (월) 17:07 (KST)답변

교과서명 관련 내용 비고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정교과서 47 백제는 한강 유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던 한의 군현을 막아 내면서 성장하였다. 한강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면 한강에 인접해야 한다.
49 미천왕 때에 낙랑군을 완전히 몰아 낸 고구려는 압록강 중류 지역을 벗어나 남쪽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낙랑군이 요서에 있었다면 낙랑군을 몰아 낸 것이 남쪽으로 진출할 발판이 될 수 없다.
7차 교육과정 중학교 국정교과서 36 백제는 성장 과정에서 중국 군현의 압력을 받아 어려움을 겪었다. 백제가 중국 세력의 간섭과 침략을 물리치면서 나라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3세기 중엽 고이왕 때였다. 초기 백제에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중국 군현은 낙랑군 밖에 없다.
2013년 금성교과서 32, 36 직접 지도에 낙랑군 위치가 명시 출처는 보완사항에 첨부파일로 들어 있음
교학사 교과서 21 낙랑군은 주변에서 성장한 동예, 삼한 등의 나라들을 통제하여 그 성장을 억제하려고 하였으나, 동예, 삼한 등을 주변으로 둘 수 있는 낙랑군의 위치는 평양 밖에 없다. 출처 상동
천재교육 교과서 22 백제는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려던 낙랑군을 몰아내고 한강으로 진출하려면 한강에 인접해야 한다.
귀하가 지금 근거라고 제시한 자료들은 각 출판사가 자신들이 임의로 선정한 사람들에게 집필을 의뢰하여 발간한 각 출판사별 검정 사설 국사 교과서의 내용입니다. 제가 근거로 제시한 것은 국가 공인 역사 편찬 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가 편찬하고 국가 기관인 교육과학기술부가 발간한 공식 국찬 국사 교과서입니다. 귀하도 잘아시겠지만 이런 각 출판사들이 만든 교과서가 좌편향이니 우편향이니 하여 내용의 신빙성에 문제가 되어 각 학교에서 채택을 두고 실로 엄청난 시비가 일기도 했습니다. 귀하의 말대로라면 금성출판사와 리베르스쿨이 우리나라 국사학설의 주류입니까? 당연하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따라서 귀하가 제시한 저런 검정 사설 국사 교과서 따위는 아무런 논박 자료가 될 수 없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이름으로 편찬하고 교육과학기술부가 발간한 공식 국찬 국사 교과서가 당연히 주류 이론입니다. 당연히 이런 검정 사설 국사 교과서 따위가 아닌 공식 국찬 국사 교과서가 인정받는 주류고 따라서 고조선 문서에는 바로 이 공식 국찬 국사 교과서의 내용에 따라 편집되어 있는 것입니다.
제가 가지고있는 (주)지학사가 발간한 검정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를 보면 지학사라는 곳이 특정 학자들에게 집필을 의뢰하고 그 내용을 교육과학기술부도 아니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라는 곳이 검정심사를 해서 나온 것입니다. 이는 당연히 국사편찬위원회같은 국가 공식 기관도 아니고 그냥 내용을 보고 심사해서 출판한 것입니다. 이러다보니 이런 사설 교과서 따위는 그 내용의 신빙성 여부에 앞서 제가 말씀드린대로 전혀 보장이 되지않아 채택 여부를 놓고 그렇게 말이 많은 것입니다.
이런 검정 사설 국사 교과서가 아닌 국사편찬위원회의 이름으로 편찬하고 교육과학기술부가 발간한 공식 국찬 국사 교과서에 고조선의 건국시기를 기원전 2333년으로 보는 것은 틀렸다라고 나온다면 당연히 귀하의 주장에 수긍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출판 시기가 앞선다는 귀하의 주장도 전혀 설득력이 없으며 이런 여러 검정 사설 국가 교과서 중에는 귀하의 주장에 반대되는 논지로 서술하는 교과서도 있습니다. 하나도 아니고 각 출판사별로 다양한 여러개의 검정 사설 국사 교과서가 판을 치는 판국에 그중 귀하의 입맛에 맞는 특정 검정 사설 교과서 2개를 선정해서 이것이 주류 이론이니 수정하라?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귀하가 제시한 "고조선이 기원전 7세기 전후에 성립되었다는 명확한 논거도 없으며, 특정 견해에 치우칠 우려가 있음. 현재의 문장은 기원전 7세기 전후 성립설까지 아우를 수 있는 포괄적인 표현임." 이 자료를 근거라고 내세우시는 이유를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고조선이 기원전 7세기 전후에 성립되었다"는 것이 근거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게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세워졌다는 주제와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그리고 "중국에서 수 많은 나라가 명멸하는 가운데 고조선은 2,000년 넘게 존속하였다."를 왜 삭제시켰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고조선은 길게 존속했는데 중국은 그렇지 않고 수많은 나라가 난립했다라"는 내용이 검정 교과서에 실리기에는 별 효용이 없는 내용이라 삭제된 것이지 고조선의 건국 시기가 기원전 2333년임을 부정하는 내용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한국사신편의 내용이 언제 발간된 것인지는 모르겠고 그것보다는 국사편찬위원회가 2012년에 발간한 국사교과서에 실린 사항이 더 영향력이 큽니다. 그 신편이 2012년 이전에 발간된 것이라면 귀하는 그것을 논박 자료로 제출하는데 시기의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귀하가 장득진 실장의 견해를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내세운 것은 그야말로 완벽한 자충수입니다. "청동기 보급 시기가 기원전 2333년이라는 시기에 미치지못해서 그동안 고조선의 건국 시기를 단정하지 못했는데 기원전 2333년에 육박하는 기원전 2000년까지 청동기 보급 시기가 올라가는 연구 성과를 근거로 건국 시기를 확정했다는 말입니다." 이해가 안가시면 장실장의 말을 다시한번 읽어보시기를 권유드립니다. "적극적으로 서술"은 사실로서 확실하게 서술한다는 의미이고 따라서 단정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송호정과 이형구같은 그야말로 대표적인 소고조론자들간의 대담을 가지고 이것이 학계의 공식적인 견해라고 주장하시는데 송호정과 이형구의 주장이 무조건 학계의 공식적인 견해입니까? 이들보다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의견이 지극히 당연하지만 더 공식적이고 인정받는 주류 견해입니다.
그리고 자꾸 제가 알아들으실만큼 자세히 설명을 해드려도 자꾸 "단정"이라는 표현에 이의를 제기하시는데 "~ 건국하였다고 한다"를 "건국하였다"로 한 것이 단정이 아니면 뭡니까? 그리고 귀하가 제시한 낙랑군 문제 역시 잘못된 주장입니다. 제가 지금 시간이 없어서 이문제는 곧 차후에 반박하도록 하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29일 (화) 14:42 (KST)답변
다음은 낙랑군 문제에 있어서 귀하에 대한 반박입니다. 귀하는 부정하실지 모르겠지만 공식 국찬 국사 교과서에서 한사군을 비롯한 낙랑군 문제는 아래와 같이 계속 일관적으로 부정하는 쪽으로 개정되어 왔습니다.
  1. 한은 고조선을 넘어뜨린 후 4군을 두어 식민지로 만들었다. 이 4군의 위치는 ...중략... 고조선의 옛 지역에는 낙랑군을, 그 남쪽 한강 이북 지역에는 진번군을, 그리고 원산만 일대에는 임둔군을 설치하였다.- 1976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2. 한은 고조선의 일부 지역에 낙랑, 진번, 임둔, 현도의 4군을 두었다.- 1982년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3. 한은 고조선의 일부 지역에 군현을 설치하여 지배하려 하였으나,- 1990년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보시는 바와 같이 애초에는 4군이 식민지라고 명시하고 구체적 군현의 이름은 물론 그 구체적 위치까지 명시하다가 1982년도에는 4군의 이름만 적고 그 위치는 생략했고 1990년도에 이르러서는 아예 이름도 사라지고 거기에다가 "지배하려 하였으나(2012년 판은 "지배하고자 하였으나")"라고 하여 과연 설치가 확실히 됐는지조차 모호하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는 갈수록 한사군 한반도설, 낙랑군 평양설이 근거가 없음이 밝혀지고 이에 국사 교과서에 싣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판단하에 이뤄진 개정들입니다.
이는 국사편찬위원회 연구관과 교육부 역사 담당 편수관을 지낸 윤종영씨가 지은 "국사 교과서 파동"이라는 책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해당 책에 보면 각 대학교의 교수들이 모여서 국사 교과서 편찬 준거안을 1986년에 만들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일단 한사군과 낙랑군에 대해서는 아래의 문제들이 제기되었습니다.(해당 책 116 페이지)
`한사군의 국내 위치를 인정해야 하는가
`낙랑군의 평양 설치를 인정해야 하는가(왕검성의 위치)
그래서 국사편찬 위원회에서 위촉된 교수들이 격렬한 토론을 거친 끝에 1986년 6월5일 국사 교과서 편찬 준거안이 확정 발표되었는데 한사군에 대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해당 책 172 페이지)
`한군현에 대해서는 근래의 학문적 성과를 유의하여 서술하되 그것이 한국사의 주류가 아님을 명확히 한다.
제가 이 과정을 굳이 일일히 설명하는 것은 한사군과 낙랑군이 국사편찬위원회에서의 토론 결과 국사 교과서에서 부인되는 방향으로 실린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정도면 국사 교과서에서 한사군이 부정되는 방향으로 서술되었음은 귀하도 인정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앞서 귀하가 제시한 그 내용들은 왜 국사 교과서에 남아있느냐?(물론 검정 사설 국사 교과서의 내용은 다룰 가치가 없으므로 제외합니다.) 일단 아래의 내용을 보시기 바랍니다.

한사군의 기술을 본문에서 삭제키로 했던 시안을 수정, 다시 본문에서 다루기로 한 것은 역시 한사군이 한국사의 주류가 아니었음을 명확히 한다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학계의 강력한 반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윤종영 저, "국사 교과서 파동" 해당 책 177 페이지

아시겠습니까? 애당초 한사군에 관련된 서술은 일절 모두 삭제하기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합의했다가 일부 학계의 반발로 몇구절을 넣었다는 것입니다. 귀하가 제시한 그내용들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서술에서조차 그 어디서도 낙랑군=평양이라는 직접적인 문구는 당연히 하나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사라졌어야할 잔재들이 마지못해 들어 있는 것으로 국사 교과서가 낙랑군 평양설을 인정하는 증거로는 당연히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분명히 국사 교과서는 아예 한사군 자체에 엄청 부정적입니다. 상황이 이럴진대 귀하의 주장처럼 낙랑군 평양설이 아무런 이의가 없는 압도적 다수설입니까?--Lhrdrth (토론) 2014년 7월 29일 (화) 17:20 (KST)답변
1. 이 출처를 보시지요. 국사편찬위원회가 직접 심의한 것이 7종의 한국사 교과서입니다만. 교과서의 내용에서 국편위의 심의 기준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해 수정하라고 하달한 것이 바로 위 출처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에 고조선의 건국 연대에 대한 내용이 이렇게 들어 있는 것이 실상입니다. 금성교과서의 수정 사항은 기원전 2333년이 실제 고조선의 건국 연대가 아니라는 서술이 명백하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공식적인 입장이라는 것은 귀하 본인도 잘 알고 있을텐데 말입니다.
2. 적어도 한국사에 있어서 국사 교과서는 국편위의 《한국사》신편과는 공신력 면에서 비교조차 불가능합니다. 1권 짜리 국사 교과서와 국편위에서 핵심 사업 중 하나로 수십 년에 걸쳐 편찬되는 《한국사》(전 52권)를 비교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국사 교과서를 만들고 그 검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사편찬위원회가 직접 학계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하여 편찬한 《한국사》의 공식 서술에서조차 고조선의 건국 연대에 대해서 가장 우호적으로 서술한 것이 구체적 정치체로 등장한 단계는 아니다라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편찬 연대를 말씀하셔봤자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한국사 연구자들의 공통된 의견 역시 현재까지도 기원전 2333년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으니까요.
또한 송호정과 이형구같은 그야말로 대표적인 소고조론자들간의 대담을 가지고 이것이 학계의 공식적인 견해라고 주장하시는데 송호정과 이형구의 주장이 무조건 학계의 공식적인 견해입니까? 이들보다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의견이 지극히 당연하지만 더 공식적이고 인정받는 주류 견해입니다.
3.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소고조선론자라는 허구의 집단을 설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적어도 학계 일반의 여러 반박 견해를 제시라도 했지요. 물론 국편위의 공식 견해 역시 전혀 다름은 위의 《한국사》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아래 내용을 보시면 더더욱 확실하지지요.국편위에 지금 현재도 올라와 있는 자주 묻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질문자께서는 상당히 예리한 시각을 가지고 계시는 듯합니다. 사실 한국고대사를 전공하고 있는 답변자로서도 현재의 국사책을 볼 때마다 이 부분이 마음에 걸리곤 했습니다. 자칫 모순으로 보여질 수도 있고, 또한 오해의 소지도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자께서는 이 부분을 바로 정확하게 지적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국사 교과서의 이와 같은 기술은 현재 학계가 안고 있는 딜레마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즉, 세계사적으로 볼 때 국가의 형성은 신석기 시대 이후 즉, 청동기 시대에 들어서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고고학적 연구 성과에 따르면, 우리 나라에서 청동기 시대는 BC 1000년을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건국은 아무리 빨라도 그 시기가 BC 1000년을 넘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고조선의 건국 사실을 전하는 단군신화에는 그 건국 연대가 BC 2333년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과연 이 기록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가 현재 학계의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증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이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이고, 또한 그 기록을 전혀 무시할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게다가 고고학적 발굴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진전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며, 이 경우 청동기 시대의 상한은 더욱 올라갈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고조선사와 관련하여 현재 학계가 안고 있는 하나의 큰 딜레마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국사 교과서는 서술되었습니다. 때문에 두 가지 가능성 모두를 제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즉, 청동기 시대에 들어와 국가가 형성되게 된다는 것과, BC 2333년의 고조선 건국설 모두를 소개하게 된 것입니다. 두 가지 견해는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국사 교과서의 내용을 잘 살펴보십시오. 고조선의 건국연대와 관련하여 "고조선은 단군왕검에 의하여 건국되었다고 한다(BC 2333)"라고 하여, 단지 단군신화의 기록을 소개하고 있을 뿐, 그것을 단정짓지는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러했을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며, 그 실제 여부는 향후의 연구성과에 맡기겠다는 뜻을 내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귀하는 여전히 국사 교과서, 그리고 학계에서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소수설 주장자를 제외하면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귀하의 사실상 유일한 근거인 국사 교과서조차도 위에 써 있다시피 단정짓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귀하 혼자서 단정했다라고 주장해봤자 이를 지지하는 견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위 인용문이 2007년 이전의 교과서에 대한 것이라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에 따르면”이라는 문장 자체가 사실 여부의 판단을 배제한 채 여기에 이렇게 써 있다는 조건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건문에 대해서 하였다고 한다를 하였다로 바꾼다고 해서 조건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사실 여부를 갑자기 판가름 내리는 것 또한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송호정 교수의 말마따나 문법상으로 틀린 개정일 뿐입니다.
3. 귀하와 저의 기나긴 분쟁 중에 개입하셨던 분들은 귀하가 주장하는 교과서와 국편위의 《한국사》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공신력이 높은 자료인가에 대해서 이미 교과서가 아닌 국편위의 공식 견해를 선택한 바 있습니다. 관련 토론 참조(Jjw 님, 팝저씨 님의 견해) 일개 교과서와 솔직히 이미 수차례나 귀하와 분쟁을 했던 주제 - 교과서의 낙랑군 문제 - 가 여기서 또 언급되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입니다. 낙랑군과 관련해서 귀하가 교과서를 근거로 어떤 편집을 하건 그것은 명백한 반달 행위일 뿐입니다. 그나마 가능한 편집이라면 낙랑군#성격에 교과서가 이러이러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수준이겠지요.--Xakyntos (토론) 2014년 7월 30일 (수) 16:20 (KST)답변
귀하가 보여준 그 출처에서 다운받을 수 있는 자료 그 어디에서 "기원전 2333년이 실제 고조선의 건국 연대가 아니라는 서술이 명백하게 포함되어 있습니다."입니까? 제가 아무리 금성출판사 관련 자료를 찾아봐도 관련해서 나오는 것은 귀하가 앞서 언급한 "고조선이 기원전 7세기 전후에 성립되었다는 명확한 논거도 없으며, 특정 견해에 치우칠 우려가 있음. 현재의 문장은 기원전 7세기 전후 성립설까지 아우를 수 있는 포괄적인 표현임." 이부분인데 이부분은 제가 앞서 지적한대로 이것은 "고조선이 기원전 7세기 전후에 성립되었다"는 것이 근거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게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세워졌다는 주제와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그리고 귀하가 올려준 그 국편위 질문은 말입니다, 최소한 2001년 이전에 올라온 자료입니다. 그 질문 답변들이 책으로 묶여서 나온 것이 아래의 링크에서 보듯이 2001년입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0314
최소한 2001년 이전에 올라온 자료를 가지고 2007년에 새롭게 반영된 자료를 논박하겠다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앞서도 그렇고 지금 귀하가 반박 자료라고 올리는 것들이 죄다 이런 식의 터무니없는 것들입니다. 한번만 더 이런 식으로 토론에 임하신다면 부적절한 토론 태도로 제재를 요청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국사 교과서 서술 문제에 관해서는 이제는 솔직히 귀하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이같은 수정에 대해 <국사편찬위원회>의 설명은 당당하다. 장득진은 "그 동안 사서에는 나오지만 고고학적 증거가 불충분했던 고조선 건국 시기가 최근 연구 성과로 근거가 뚜렷해짐에 따라 서술 방식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이종호 이형석 저, '고조선, 신화에서 역사로" 28쪽

장 실장은 "이전 역사교과서에서는 고조선을 비롯한 한반도의 국가는 청동기시대부터 존재했다고 밝히면서도 청동기 보급시기를 최고 기원전 15세기로 잡았다"며 "이 탓에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됐다는 고조선의 역사와 맞지 않아 배우는 학생들이 의아해 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교과서에서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단군왕검에 의해 건국됐다고 적극적으로 서술되지 못한 이유는 이 시기에 청동기가 보급됐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연구성과가 충분하지 못한 탓이 크다. 장 실장은 "우리가 만주 등의 유적들에 접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동안 청동기문화를 토대로 세워진 고조선의 존재를 뒷받침할 만한 실증적인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최근 들어 관련 연구성과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이번 교과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한반도 청동기 보급시기를 기원전 2000년쯤까지 앞당겼다"고 분석했다.

앞서서도 제시된 그렇게 수정한 것에 대한 국편위의 입장입니다. 모두 기원전 2333년 고조선 건국시기가 그 주된 핵심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다시한번 설명해드리죠. 저것은 "청동기 보급 시기가 기원전 2333년이라는 시기에 미치지못해서 그동안 고조선의 건국 시기를 단정하지 못했는데 기원전 2333년에 육박하는 기원전 2000년까지 청동기 보급 시기가 올라가는 연구 성과를 근거로 건국 시기를 기원전 2333년으로 확정했다"는 말입니다. 자 분명히 이런 근거 자료가 있는데 "대한민국의 국사 교과서는 고조선의 강역으로 추측되는 랴오닝 성 및 한반도의 고고학 발굴 결과를 토대로 기원전 2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에 청동기 시대가 본격화된다고 서술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고조선의 건국 시기도 기원전 2333년으로 단정하였다."다는 제 편집에 도대체 무슨 오류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리고 남겨주신 답변을 보니 국사 교과서가 낙랑군을 비롯한 한사군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서술됐다는 것은 이제 부인을 못하시는군요.그리고 같은 국사편찬위원회의 편찬물인데 귀하의 입맛에 따라 "국사 교과서"는 믿을 수 없는데 "한국사"는 믿을 수 있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궤변인지 저는 납득이 안갑니다. 국사교과서가 그 한국사보다 더 신간이므로 전자가 더 신빙성있는 국편위의 입장임이 순리아닙니까? 그리고 귀하가 링크한 토론에서 팝저씨님도 "국사편찬위원회는 국가가 세운, 한국사에 있어서는 가장 믿을만하고 권위있는 곳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국사 교과서도 바로 그 국사편찬위원회가 편찬한 것입니다. 아마도 팝저씨님은 그 사실을 모르고 그런 말씀을 하신 것 같은데 팝저씨님의 논리대로라면 국사 교과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낙랑군 문서에서 귀하의 주장처럼 낙랑군 평양설이 아무런 이의가 없는 압도적 다수설이라는 주장은 더이상은 통용될 수 없고 앞으로는 그에 적합한 수준의 수정 편집이 이뤄져야만 할 것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30일 (수) 19:33 (KST)답변

위키백과는 인터넷 공개백과입니다. 따라서 신속한 최신 학설의 반영 또한 위키백과의 가장 큰 장점이자 이점입니다. 귀하는 지금 새로운 최신 학설의 반영을 명백히 방해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2007년 개정된 국사 교과서는 고조선의 건국 시기를 기원전 2333년으로 단정하였습니다. 이는 위키백과의 원칙에도 어긋나고 발전에도 저해되는 행위입니다. 삼가해주시기를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30일 (수) 19:53 (KST)답변

토론 중에 제가 언급되어 몇 말씀 남깁니다. 우선, 위키백과 내에서 검인정 이전의 국정교과서와 현재의 여러 가지 검인정 교과서 사이에 출처의 권위에 대한 우열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백:출처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두고 출처의 우위를 따지는 논쟁은 소모적일 뿐 별다른 실익이 없습니다. 제 생각엔 교과서 원문에 “~임이 확실하다”등의 표현이 없다면 단정하였다는 용어보다는 설명하였다거나 서술하였다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기원전 2333년을 단군 조선 건국의 해로 보는 것은 모두 《고기》(古記)에 근거한 것입니다. 《고기》 자체는 현존하지 않고 이를 인용한 《삼국유사》와 《제왕운기》 등이 전할 뿐입니다. 현재 국사교과서의 서술은 대체로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중국의 요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이 되는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두고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웠다”는 기사를 근거로 이를 서기로 환산하여 단군 조선의 건국을 기원전 2333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출처를 막론하고 모두 동일한 사료를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외에는 다른 사료가 없으니까요. 백과사전의 역사 서술에서는 되도록 다수가 인정할 수 있는 출처와 근거를 가지고 객관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바, 현재로서는 삼국사기에 요임금 50년 단군 조선을 건국하였다는 기사가 나오며 이를 서기로 환산하면 기원전 2333년이 된다는 설명이 최선입니다. 이것을 특성 교과서가 단정하였다고 설명하는 것은 백과사전의 취지에도 맞지 않고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 Jjw (토론) 2014년 7월 30일 (수) 20:06 (KST)답변
국사편찬위원회가 출판한 공식 국찬 국사 교과서와 개별 출판사가 출판한 검정 사설 교과서는 분명히 전자가 더 명백한 신뢰성과 우위가 있습니다. 팝저씨님의 ""국사편찬위원회는 국가가 세운, 한국사에 있어서는 가장 믿을만하고 권위있는 곳입니다." 라는 의견에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리고 지금 문제가 되는 부분은 공식 국찬 국사 교과서에 그렇게 내용이 개정되었으므로 추가된 부분입니다. 국사 교과서의 해당 내용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국사편찬위원회가 무작정 건국 시기를 기원전 2333년으로 단정한 것도 아니고 해당 토론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청동기 발굴 연대의 최신의 고고학적 성과를 반영한 근거가 분명한 개정입니다. 오해없으시기 바랍니다. 이는 제 개인의 일방적 주장이 아니라 확인해보시면 아시겠지만 국사편찬위원회의 개정 자료를 가지고 추가한, 근거가 분명한 편집임을 알려드립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30일 (수) 20:15 (KST)답변
현행 교육과정에서 국사 교과서는 모두 검인정 교과서이고 이는 모두 동일하게 동등한 지위를 갖습니다. 이전의 국정 교과서가 이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검인정이든 국정이든 사료가 하나 뿐이니 이를 어찌 해석하느냐의 차이가 약간 있을 뿐 사료에 따라 서기로 환산하면 기원전 2333년이 된다고 설명하는 것도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역사 학자마다 이에 대한 해석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요임금 자체가 신화적 인물인지 실존 인물인지가 논란이 있는 마당에 요 임금 즉위 50년이란 사료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는 서로 해석이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좀 더 덧붙이면 에드워드 핼릿 카가 그의 저서에서 말하듯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부단한 대화이며 이 대화는 일률적일 수 없습니다. 어떤 하나의 권위만이 절대적이라는 주장은 현대 역사학 일반에서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당장에 고조선기의 국가 기원에 대해서는 읍락국가설, 군장국가설 등 이론이 있고, 고조선의 강역과 역사에 대해서도 사료 자체가 매우 부실하여 다수의 이견이 존재합니다. 또한 최신 고고학적 성과에 따르면 요동반도에는 이미 신석기 시대에 복합적 문화가 존재하였습니다. 단군에 관한 기사에 거울이 등장하는 것을 근거로 하면 단군은 명백히 청동기 문화에 속하기 때문에 신석기 문화와 청도기 문화의 이전에 대한 논의도 복잡하게 진행중입니다. 하나의 것만을 절대적이라고 주장하지 말아주세요. 제 의견은 오늘은 여기까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하나도 오해하는 것 없으니 제 의견을 부디 경청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Jjw (토론) 2014년 7월 30일 (수) 20:26 (KST)답변
죄송하지만 저로서는 각 출판사별로 발간하는 검정 사설 국사 교과서들보다는 우리나라의 여러 학자들이 모여서 연구하여 국사를 편찬하는, 국가 공식 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가 편찬하는 공식 국찬 국사 교과서가 당연히 주류 이론이고 준거가 됨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이 지금 논쟁이 되는 부분은 제 개인적 주장이 아니라 2007년에 국사편찬위원회가 최신 고고학 발굴 성과를 근거로 고조선 건국시기를 기원전 2333년으로 단정했으므로 저는 그러한 최신 학설을 반영하여 국사 교과서가 그렇게 개정되었다는 부분을 거기에 적합하게 편집한 것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30일 (수) 20:36 (KST)답변
1. 수없이 말씀드렸다시피, 교과서 그 어디에도 확정했다거나 단정했다는 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Lhrdrth 사용자가 가져온 장득진 실장의 발언을 귀하가 혼자 해석한 내용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혀 그렇게 해석하지 않으며, 그에 대한 충분한 근거까지 들어 보여드렸습니다. 현재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은 오히려 귀하입니다.
2. 역시 셀수도 없이 말씀드렸습니다만, 저는 물론이고 송호정, 이형구를 비롯한 수많은 대한민국의 역사학자들 그 누구도 기원전 2333년을 실제 건국 연도라고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물론 국사교과서의 내용도 위에 인용한 국편위 질문답변란의 답변처럼 단지 단군신화의 기록을 소개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문장을 하였다고 한다에서 하였다라고 바꾼다고 해서 그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귀하 혼자서 달라졌다고 주장해봤자 그걸 입증하지 못하는 한 아무 쓸모 없는 일입니다. 즉, 단정하였다는 말 그 자체가 오류입니다.
3. “국사 교과서가 낙랑군을 비롯한 한사군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서술됐다는 것”은 부정할 이유가 없죠. 하지만 그 방향은 귀하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대체 몇 번을 말씀드려야 합니까? 국사 교과서는 민족주의적인 경향으로 인해 낙랑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사실이 국민 교육에 부정적이라고 판단, 그 사실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서술한 것입니다. 결단코 없었다고 서술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귀하 혼자서 없다고 주장해봤자 교과서 본문 어디에도 낙랑군이 평양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말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아니면 귀하께서 찾아와 보시죠. 교과서 어디에 낙랑군의 위치가 다른 곳이라고 써 있는지.
ps. 낙랑군 이야기를 대체 왜 고조선 문서에서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추후 낙랑군 관련 내용이 필요하다면 토론:낙랑군을 이용하십시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30일 (수) 20:29 (KST)답변
저는 2007년에 국사편찬위원회가 최신 고고학 발굴 성과를 근거로 고조선 건국시기를 기원전 2333년으로 단정했으므로 그렇게 편집했고 이 부분을 그렇게 Xakyntos 귀하에게 지금까지 설명했는데도 귀하께서 제가 억지를 부린다식으로 주장하시는 대해서는 정말 어이가 없을 뿐입니다.
그리고 국사편찬위원회가 그렇게 판단하는데 대한민국의 역사학자들이 뭐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않는다는 것입니까? 국사편찬위원회는 엄연히 대한민국의 역사학자들로 이뤄진 기관입니다. 그리고 귀하가 올린 그 국편위 질문은 최소한 2001년 이전의 국편위 입장이고 2007년에 국편위가 입장을 변경한 부분이라고 설명드렸는데 또 이렇게 언급하시니 도대체가 제 답변을 제대로 읽기는 하시는지 의문이 듭니다.
국사 교과서는 민족주의 성향으로 한사군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 제가 자료를 제시한대로 여러 학자들이 모여서 토론을 하고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거기에 대한 준거안을 마련해서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낙랑군 문제는 말씀하신대로 해당 문서에서 토론을 하도록 하지요. 낙랑군 문서 보호가 풀릴 즈음에 여기서 토론된 내용을 옮기고 해당 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문제 제기를 낙랑군 토론 문서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30일 (수) 20:47 (KST)답변
1. 2007년에 편찬된 국사 교과서가 해당 내용을 단정했다는 근거를 가져오시면 됩니다.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 현재 상황인 것을 어쩌란 말입니까? 귀하가 가져온 근거라고는 장득진 실장의 발언 뿐이고, 그 발언조차도 귀하의 해석과 달리 볼 수 있다는 근거를 저는 이미 제시했습니다. 물론 교과서가 단정한 것이 아니라는 근거 또한 《한국사》, 국편위의 Q&A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를 든 바 있습니다. 물론 교과서 본문 어디에도 단정했다라고 볼 수 있는 내용은 없습니다. 근거라고는 전혀 없는 상황인데 대체 누가 억지를 쓰고 있는 겁니까? 어이가 없는 것은 오히려 저입니다만.
2. 저는 적어도 바로 그 국편위가 국사 교과서를 개정한 2006년 당시 송호정을 비롯한 한국사학계의 반대 목소리를 근거로 들었습니다만? 국사 교과서가 잘못된 방향으로 서술되었다는 학계 일반의 반대 목소리가 명백한데 대체 국사 교과서가 한국사학계의 정설이라는 말이 가당키나 합니까? 이 점부터 해명해 보시지요.--Xakyntos (토론) 2014년 7월 30일 (수) 23:21 (KST)답변

근거는 위에서 질리도록 들어드렸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근거를 가져오라고 하시면 도대체 저보고 뭘 어쩌라는 말입니까? 그리고 송호정만 한국 사학계고 국사편찬위원회는 한국 사학계가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십시오. 송호정이 주류인지 국사편찬위원회가 주류인지. 뭘 해명을 해야될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가 국사편찬위원회의 의견도 못믿겠다는데 무슨 말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국편위의 Q&A 예를 든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2번이나 지적했는데 또 그걸 근거라고 내세우니 도대체 정상적인 토론의 의지 자체가 있으신지 솔직히 의문이 갑니다. 그리고 귀하와 그동안 숱한 논쟁을 했지만 일리가 있고 타당하다면 제가 양보도 서슴치않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은 귀하의 의견이 명백히 틀렸습니다. 저로서는 도무지 타협의 여지는 없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30일 (수) 23:42 (KST)답변

귀하가 질리도록 가져왔다는 근거라고는 장득진 실장 딱 한 사람의 발언 밖에 없습니다. 그것 말고 대체 무슨 근거를 가져오셨습니까?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 한 가지 말고 근거라고는 없습니다. 다른 근거를 제발 좀 보여라도 주십시오.
반면 저는 적어도 송호정, 이형구의 대담(경향신문 기사)을 비롯한 각계 각층의 학자들이 한 반박(한겨레 기사), 국편위의 핵심 사업으로서 교과서 따위와는 권위 면에서 비교조차 불가능한 《한국사》신편, 국편위의 Q&A, 2013년 현재의 검인정 교과서의 내용까지 수많은 자료를 제시했습니다. 지금 현재 국편위의 의견 자체가 청동기 시대 편년을 기원전 2000년 경까지 끌어올렸다는 것 뿐입니다. 기원전 2000년은 기원전 2333년보다 300년 뒤입니다. 위에 인용한 국편위 Q&A의 상황과 대체 무슨 차이입니까? 연대가 800년 정도 앞당겨졌을 뿐 여전히 300년이나 모자랍니다. 상황이 이럴진대 교과서가 2333년을 공식 인정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는 자명합니다.
정리하겠습니다. 귀하는 국편위가 기원전 2333년을 공식적인 건국 연도로 확정했다는 근거를 제시하십시오. 현재 귀하가 제시한 그거라고는 장득진 실장의 발언 하나 밖에 없으며, 그 발언조차도 그렇게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많은 실례를 들어 설명해드렸습니다. 근거라고는 하나도 대지 못하면서 정상적인 반박에 억지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귀하입니다.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하셨습니까? 그렇다면 귀하는 토론을 할 자격도 없는 겁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31일 (목) 09:56 (KST)답변
지난 토론들을 살펴보니 두 사용자 분 모두 오래 전부터 이 문제로 토론을 하였고 사용자 관리와 문서 관리 요청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단은 두 분 모두 다른 사용자들의 의견을 기다려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지금 당장에는 Lhrdrth님께서 과거 국정으로 사용하였던 국사 교과서가 단군 조선의 건국시기를 단정하였다고 주장하시고 이 문서 본문에 그렇게 편집하신 것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두 분 사이의 오랜 토론과 이 토론란에서 제출된 모든 자료를 살펴보아도 국정교과서가 그렇게 단정하였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상식적으로 상고시대의 역사에 있어서 사료가 불충분할 경우 그것이 무엇이건 단정한다고 판단하는 학자는 없습니다. 위에 국사편찬위의 답변도 결코 단정하였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Lhrdrth 님께 제안드리고 싶은 바는 상대가 지적하는 합리적 부분에 대해서는 수긍을 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국정교과서를 그냥 출처로 사용하느니 다른 여러 출처를 병행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하는 것이 객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요임금 즉위 50년에 단군이 평양성을 도읍으로 정하고 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한다. 이를 서기로 환산하면 기원전 2333년이 된다. 대한민국의 국사 교과서에서는 이를 근거로 고조선 건국 년도를 산정하고 있다. ”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여기까지 하시길 부탁드립니다. 동의하신다면 출처와 함께 제안드린 바와 같이 문서의 내용을 편집해 넣겠습니다. 부디 이런 지엽적인 것으로 격한 토론을 계속하지 마시고 문서 자체가 부실한 부분에 눈을 돌려 주시길 바랍니다. -- Jjw (토론) 2014년 7월 31일 (목) 14:13 (KST)답변
Xakyntos 귀하의 지금까지의 주장의 요지는 2007년 국사 교과서 고조선 건국 시기 개정 부분이 기원전 2333년이라고 건국시기를 단정한 것이 아니고 고조선이 건국된 사실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것인데 그게 도대체 말이나 됩니까? 귀하의 주장대로라면 고조선이라는 나라가 세워졌는지조차 불명확한데 어떻게 세워지지도 않은 나라가 연나라와 전쟁을 하고 한나라와 전쟁을 합니까? 해당 개정의 요지는 당연한 말이지만 고조선은 당연히 실존한 나라였고 다만 문제되는 부분이 과연 기록대로 기원전 2333년에 세워진 것이 진짜였는가 아니였는가 하는 문제인데 최근의 청동기 발굴 연대의 고고학적 성과로 기원전 2333년에 세워진 것을 확실하게 단정했는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제 편집이 틀린 부분이 뭐가 있습니까? 아래 그렇게 수정한 국편위의 입장을 다시한번 올려드리니 자세히 살펴보시란 말입니다. 그렇게 직접 수정한 국편위의 설명만큼 확실한 근거가 도대체 뭐가 있단 말입니까? 자꾸 이런 명백한 근거를 두고 일방적 주장으로 근거가 없다고 하시는데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이같은 수정에 대해 <국사편찬위원회>의 설명은 당당하다. 장득진은 "그 동안 사서에는 나오지만 고고학적 증거가 불충분했던 고조선 건국 시기가 최근 연구 성과로 근거가 뚜렷해짐에 따라 서술 방식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이종호 이형석 저, '고조선, 신화에서 역사로" 28쪽

장 실장은 "이전 역사교과서에서는 고조선을 비롯한 한반도의 국가는 청동기시대부터 존재했다고 밝히면서도 청동기 보급시기를 최고 기원전 15세기로 잡았다"며 "이 탓에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됐다는 고조선의 역사와 맞지 않아 배우는 학생들이 의아해 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교과서에서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단군왕검에 의해 건국됐다고 적극적으로 서술되지 못한 이유는 이 시기에 청동기가 보급됐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연구성과가 충분하지 못한 탓이 크다. 장 실장은 "우리가 만주 등의 유적들에 접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동안 청동기문화를 토대로 세워진 고조선의 존재를 뒷받침할 만한 실증적인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최근 들어 관련 연구성과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이번 교과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한반도 청동기 보급시기를 기원전 2000년쯤까지 앞당겼다"고 분석했다.

--Lhrdrth (토론) 2014년 7월 31일 (목) 18:49 (KST)답변
그리고 Jjw님의 제안은 감사드립니다. 그렇지만 국사편찬위원회가 최신의 연구 성과로 고조선 건국시기를 기원전 2333년으로 단정한 부분은 매우 중요한 학술적 성과로서 고조선 문서나 토론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언론에서도 핫이슈로서 대대적으로 보도한 사안입니댜. 위키백과라는 공개백과의 특성상 이런 중요한 최신 학술적 성과의 반영은 필수적입니다. 따라서 국사교과서가 고조선 건국시기와 관련하여 2007년에 개정된 부분은 삭제될 수 없는 내용이고 그부분은 저와 사용자 Xakyntos와의 편집분쟁 이전에도 이미 올라와있던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그 부분을 삭제하자는 의견은 무리라고 생각됩니다. 죄송합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31일 (목) 18:57 (KST)답변

제가 또 위에 올려드린 국사 교과서를 그렇게 개편한 국편위 장득진 실장의 의견을 보십시오. "고조선 건국 시기가 최근 연구 성과로 근거가 뚜렷해짐"이라고 했습니다. Xakyntos 귀하의 주장대로 건국 사실이나 주체가 아니라 분명히 건국 시기 즉 고조선이 건국됐다는, 기록에 나오는 기원전 2333년에 관련된 문제란 말입니다. 두번째도 "이 탓에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됐다는 고조선의 역사와 맞지 않아 배우는 학생들이 의아해 했다고 말했다."라고 하여 분명히 기원전 2333년 건국 시기 확정과 관련된 문제라고 설명하고 있지않습니까? 그래서 최근의 고고학적 연구 성과가 한반도 청동기 보급시기를 기원전 2000년쯤까지 앞당겼으므로 그런 연구 성과에 맞춰서 고조선의 건국 시기를 기원전 2333년으로 확정했다는 설명입니다. 저기 어디에 귀하의 주장처럼 건국 사실이나 주체를 단정했다는 말이 나옵니까? 귀하가 올린 대담 기사에서도 이형구는 " 기원전 2333년의 선입견에 맞춰 청동기 상한선도 기원전 20세기까지 올라간 게 아니냐고 하는데"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까지 말씀을 드렸는데도 이해를 못하시고 계속 근거가 없다고 하면 저로서는 정말 방법이 없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31일 (목) 19:23 (KST)답변

고조선의 건국연대와 관련하여 "고조선은 단군왕검에 의하여 건국되었다고 한다(BC 2333)"라고 하여, 단지 단군신화의 기록을 소개하고 있을 뿐, 그것을 단정짓지는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건국 사실이나 주체 문제는 별개로 친지가 오래인데 말입니다. 지금 논의는 모두 건국 연대만 놓고 벌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귀하의 말씀은 전혀 아니라고 대체 몇 번을 말씀드려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국편위 Q&A의 저 한 문장으로 끝나는 문제입니다. 교과서는 하늘이 두쪽이 나도 학계에서 논란이 있는 내용을 단정하지 않습니다. 귀하는 단정했다는 근거를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이미 다른 여러 근거와 해석을 통해 장득진 실장의 발언은 단정했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미 위에 Jjw 님께서도 귀하의 해석이 옳지 않다고 판단하신 바 있습니다.
아주 간단한 문제입니다. 귀하가 가져온 증거가 틀렸으니 다른 증거를 가져오라는 말입니다. 근거라고는 하나 뿐인데 그 하나의 근거조차도 틀렸다는 반박이 나왔으면, 다른 근거를 가져오던가 근거가 틀리지 않았다고 증명하시면 되는 일입니다. 지금처럼 자신의 해석만을 근거로 억지 주장을 펼치는 것을 가리켜 독자연구라고 합니다. 위키백과에서 금지되어 있는 행위죠. 확실한 근거를 들어 증명하지 않는 한 지금 귀하의 행동은 차단 대상일 뿐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31일 (목) 19:35 (KST)답변
제가 도대체 몇번이나 지적해드렸습니까? 귀하가 올린 그 국편위 Q&A는 2001년에 올라온 것입니다. 최소한 2001년 이전에 올라온 자료를 근거랍시고 2007년에 새롭게 국편위가 입장을 변경한 부분을 반박한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제가 벌써 이 부분을 몇번이나 지적했습니까? 한번만 더 이걸 근거랍시고 인용하면 고의적인 토론 훼방으로 제재를 요청하겠습니다. 다시한번 알아들기 쉽게 풀어드릴까요? 귀하가 지금 근거로 든 국편위 Q&A는 최소한 2001년 이전의 것이고 이후 2007년에 장득진 실장의 말처럼 국편위는 "그 동안 사서에는 나오지만 고고학적 증거가 불충분했던 고조선 건국 시기가 최근 연구 성과로 근거가 뚜렷해짐에 따라 서술 방식을 변경했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고조선 건국 시기 이 부분이 안보이십니까? 귀하의 이런 행위는 엄연히 2007년에 개정판이 나온 책을 가지고 2001년 이전에 나온 판을 보고 2001년판이 2007년판보다 더 최신판이라고 우기는 행위입니다. 우습지않습니까?
그리고 Jjw님께서도 "대한민국의 국사 교과서에서는 이를 근거로 고조선 건국 년도를 산정하고 있다."라고 하셔서 기원전 2333년 문제를 분명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귀하가 편집분쟁을 유발한 해당 편집을 볼까요? "기존 교과서의 건국하였다고 한다는 문장을 건국하였다라고 조금 더 확정적으로 서술하였다."고 하여 건국 시기 즉, 기원전 2333년을 쏙 빼먹었습니다. 왜 엄연히 국사 교과서에 기원전 2333년에 건국하였다라고 단정적으로 서술했는데 그 부분을 생략합니까? 이거야말로 명백한 고의적인 사실왜곡아닙니까? 귀하의 이런 편집태도야말로 차단 대상임을 명백히 인지하십시오. 그리고 자꾸 근거가 없다고 하는데 제가 벌써 몇번이나 국편위 의견으로 입증을 했습니까? 근거없다고만 하지말고 제가 앞서 든 국편위 입장으로 내세운 논리에 대해서 왜 근거가 없는지 구체적으로 반박이나 한번 해보십시오.--Lhrdrth (토론) 2014년 7월 31일 (목) 21:01 (KST)답변

또한 지금 당장에는 Lhrdrth님께서 과거 국정으로 사용하였던 국사 교과서가 단군 조선의 건국시기를 단정하였다고 주장하시고 이 문서 본문에 그렇게 편집하신 것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두 분 사이의 오랜 토론과 이 토론란에서 제출된 모든 자료를 살펴보아도 국정교과서가 그렇게 단정하였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문장은 읽지 못하신 겁니까? 핵심은 이것입니다. 건국 연도가 기원전 2333년이라는 기록으로서의 사실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귀하가 저 기원전 2333년이 실제 건국 연도라고 국사 교과서가 단정했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대체 몇 번을 말씀드려야 합니까? 2007년에 국사 교과서는 청동기 시대의 편년을 상향 조정했을 뿐입니다. 그나마 그렇게 상향 조정한 편년도 기원전 2000년 경입니다. 기원전 2333년보다 300년이나 모자라요. 애초에 편년 자체가 맞지 않는데 대체 누가 어떻게 기원전 2333년을 단정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Jjw 님도, 저도 이 토론에 제시된 모든 자료에서 교과서가 건국시기를 단정했다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모든 근거가 그렇다는 Jjw 님의 말씀 안보이십니까? 귀하 혼자 연도가 다르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해봤자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2001년의 답변과 2007년 국사 교과서의 입장에는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 단지 편년이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 보는 것이 변했을 뿐,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2001년의 답변만으로도 귀하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서 충분합니다.
귀하는 국편위 의견으로 입증이라는 것을 전혀 하지 않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