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키아노폴리스
마르키아노폴리스 Μαρκιανούπολις | |||||
---|---|---|---|---|---|
![]() | |||||
국가 | 불가리아 | ||||
도시 | 바르나주 |

마르키아노폴리스(Marcianopolis) 또는 파르테노폴리스(Parthenopolis)는 모이시아 인페리오르에 있었던 고대 그리스 및 고대 로마의 도시이다. 오늘날 불가리아의 데브냐라는 도시의 위치에 있었다. 부분적으로 발굴이 이뤄졌고, 마르키아노폴리스의 빌라에 있던 모자이크 바닥들에 관한 박물관 컬렉션으로 알려졌다.
역사
[편집]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는 106년에 끝난 제2차 다키아 전쟁 종료 후에 파르테노폴리스라는 고대 도시의 이름을 바꾸었다. 그 도시는 트라야누스의 누이, 울피아 마르키아나의 이름을 따 붙여졌다.[1] 중요한 전략적 거점이었던, 이곳은 187년부터 193년까지 로마령 트라키아의 일부였고, 그 뒤에는 모이시아 인페리오르에 속했다.
세베루스 왕조 시기의 마르키아노폴리스의 번영은 248–249년의 고트족 침입과 그 후의 북쪽의 야만인들의 침입으로 끝이나고 말았다. 로마군은 갈리에누스 집권기 동안인 267년 (혹은 268년)에 이곳에 대한 고트족의 또다른 침입을 격퇴시켰다.[2]
디오클레티아누스 시기, 마르키아노폴리스는 트라키아 대관구의 모이시아 세쿤다 속주의 중심지가 되었고, 3세기 말과 4세기 초에 철저히 재건되었다. 4세기에 이웃한 오데소스 (바르나, Odessos)의 희생으로 중요도가 커졌다. 이곳은 중요한 교회 행정의 중심지이었고 20세기에 이 당시의 교회가 발굴되기도 하였다. 발렌스 황제의 고트 전쟁 기간 (366-369년), 마르키아노폴리스는 동로마 제국의 일시적인 수도였고 이 당시 기록에 의하면 트라키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3]
447년에, 치열했던 우투스강 전투가 종료되자 마자, 아틸라의 훈족들에 파괴되었다.[4]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가 이곳을 재건하고 요새화했다. 587년에, 아바르족에 약탈되었으나 곧장 비잔티움군에 탈환되었다.[5] 비잔티움군은 도나우강을 건너 아바르족을 공격하기 전인 596년에 이곳에 주둔했다.[6] 꾸준한 야만인들의 침입에도, 마르키니아폴리스는 614-615년에 아바르족의 공격으로 결국에 파괴되기 전까지 중요한 중심지 지위를 유지했으며, 훨씬 후에 지도들에도 꾸준히 계속 언급되었다.
슬라브족들이 7세기에 발칸반도에 정착하였고, 이들은 마르키아노폴리스의 유적을 '데비나'(Devina)라 불렀다.
구경거리
[편집]

마르키니아폴리스의 유적지에는 원형극장, 일부 도로, 그리고 모자이크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3세기 말에서 4세기 초의 로마 시대 빌라인 안티오페 저택의 많은 정교한 모자이크가 있다.[7]
각주
[편집]- ↑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 XXVII, 4, 12
- ↑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 Claudius, 9; 조시무스, I, 42
- ↑ Amm. Marcell., XXVII, 5; 테오파네 Chronographia, A. M. 5859, 5860, 5861
- ↑ 에드워드 아서 톰슨; 피터 헤더. The Huns, Blackwell, 1999. pp. 101–102. ISBN 0-631-21443-7.
- ↑ 테오파네, "Chronographia" A. M. 6079
- ↑ 테오파네, "Chronographia", A. M. 6088
- ↑ http://liternet.bg/publish10/aangelov/mozaikite.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