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면하(姜冕夏, 1901년 8월 26일~1987년 4월), 후에 강재호(姜宰豪)로 개명한 인물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團)을 조직하여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교통부(交通部)와 연락을 취하면서 교통국(交通局)이라는 비밀연락기구를 설치하고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의 활동으로 대한민국의 독립에 크게 기여했다.[1]
함경남도 이원에서 태어난 강면하는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며 1920년 고향에서 대한독립군비단인 홍익청년단(弘益靑年團)을 조직하고 교통국을 설치했다. 임시정부 내무부의 비밀연락망 조직인 연통제(聯通制)를 통해 당시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총장 안창호와 연락을 유지하며 군자금 모금에 힘썼으나 1921년 1월에 체포되었다.
함께한 안창호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1921년 3월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최고형)을 선고받고, 서울복심법원에서 확정되어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에서 복역했다.
석방된 후에도 항일운동을 계속하였으며, 1925년 장의단 서울 폭탄사건, 1927년 보천보사건 등에 관련되어 검거되었다. 석방이후 항일구국운동을 지속했다.
강면하의 독립운동에 대한 기여는 건국훈장 애족장 수여를 통해 인정받았으며, 그의 노력은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연통제와 교통국의 활동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국내외 국민 간의 독립 의지를 상통하고 구국 사업의 완성을 기하며, 내외의 독립을 수립하기 위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2]